항목 ID | GC06600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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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樂敏 |
영어공식명칭 | Hong Nakmin |
이칭/별칭 | 루카,루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태 |
[정의]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개설]
홍낙민(洪樂敏)[1751~1801]은 이존창(李存昌)과 더불어 충청도 내포 지역의 천주교 전파와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홍낙민의 실천과 노력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호감을 가지도록 만들었고, 많은 입교자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활동 사항]
홍낙민은 1751년(영조 27) 예산의 풍산홍씨(豊山洪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한양으로 이주한 뒤 1789년(정조 13)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전적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이승훈·정약용 등과 교유하며 1784~1785년 사이에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세례명은 루카[또는 루가]이다.
『수기』에 따르면 홍낙민은 삽교읍 호동리에 전장(田庄)과 노복(奴僕)을 두고 있었으므로 자주 왕래하며 몇 달씩 머물렀다.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노비들은 대가 없이 양인으로 풀어 주었으며,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에도 힘을 쏟아 내포 지역의 집단적 입교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홍낙민을 일컬어 박종악은 “사학도의 와주(窩主)요 종장(宗匠)”이라고 묘사하기도 하였다.
홍낙민은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1801년(순조 1) 4월 8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홍낙민은 몇 차례 겉으로는 배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였고, 특히 묵주기도를 거르지 않고 바쳤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2014년 8월 16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홍낙민을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복자로 시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