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
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중 화순 능주 지역의 지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을 겪은 조선 사회는 18세기 영조와 정조 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각종 문물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농업 부문의 생산력 또한 높아지고 더불어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18세기에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
-
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중 화순 동복 지역의 지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을 겪은 조선 사회는 18세기 영조와 정조 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각종 문물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농업 부문의 생산력 또한 높아지고 더불어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18세기에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
-
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중 화순 지역의 지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을 겪은 조선 사회는 18세기 영조와 정조 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각종 문물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농업 부문의 생산력 또한 높아지고 더불어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18세기에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적되었...
-
조선 시대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경양도에 속한 역. 가림역의 위치는 지금의 화순군 화순읍 내평리 일대이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 화순 서면에 가림촌(佳林村)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지명은 가림역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가림역은 화순현에 설치된 관영 교통 시설이다. 고려 때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기록은...
-
조선 시대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경양도에 속한 역. 검부역(黔富驛)은 지금의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경양도 찰방역이 거느리던 8개 역 가운데 하나이다. 검부역이 있던 곳은 지금의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 일대이다. 가림역과 연결되며 전라남도 곡성 지역의 옥과로 가는 길목에 위치했다. 『호구 총수(戶口總數)』 동복현 읍내면(邑內面)에 구역촌(舊驛村)과 신역촌(新...
-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성화(聖化).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예로 증 공조 판서 문이망(文以望)의 아들이다. 문세인(文世仁)[?~?]은 품성(稟性)이 온후(溫厚)하며 나이 90이 넘었음에도 강장무양(康壯無恙)하니 영조 조에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제수하였다....
-
조선 시대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화순 지역에는 조선 시대에 화순현·동복현·능주목 등 3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화순현에는 가림역(加林驛)·신원(新院)·내화원(乃火院)·고자원(古者院)·삼원(三院)이 있었고, 동복현에는 검부역(黔富驛)·남비원(攪轡院)·방석원(方席院)·남덕원(南德院)·사평원(沙坪院)·여점원(餘岾院)이 있었으며, 능주목에는 인물...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찬화(贊華), 호는 석천(石川). 완창대군(完昌大君)의 8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증손(曾孫)이고, 증 참의(參議) 이희춘(李希春)의 아들이다. 이사종(李嗣宗)[1543~1634]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고경명(高敬命)이 금산성 전투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이소...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유(伯由) 호는 모재(慕齋). 완창 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고손(高孫)이고,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며 어머니는 남평 진씨(南平陳氏)로 주부(主簿) 진복흥(陳復興)의 딸이고 부인은 나주 오씨(羅州吳氏) 오진남(吳進男)의 딸이다....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천(允天) 호는 추봉(秋峯). 완창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고손(高孫)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정기(李廷機)[?~1636]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둘째 형 이정추, 동생 이정근과 함께 창의하였다. 경기...
-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유(士由), 호는 도곡(道谷). 완창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동생 이정추(李廷樞), 이정기(李廷機), 이정근(李廷根)은 병자호란 때 의병이다. 이정립(李廷立)[?~?]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고경명(高敬命)...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서원(瑞元), 호는 도계(道溪).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정추(李廷樞)[?~?]는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자제들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켰다. 충청남도 아산(牙山)에 나아가 과천(果川)의 남태령(南泰嶺)에서 청나라 군대와 맞서 싸웠으나 적에...
-
조선 시대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경양도에 속한 역. 인물역이 있던 지역은 지금의 화순군 이양면 금릉리 인물 마을이다. 『호구 총수(戶口總數)』 능주목 상동면(上東面)에 인물리(仁物里)가 기록되어 있는데 뒤에 송석면에 속했다가 1932년 이양면에 속하였다. 인물역은 화순 가림역과 보성 가신역을 연결하는 지역에 있었다. 인물역은 전라남도의 중심부에...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에 있는 조선 시대 충신 정려 마애비. 전주 이씨 육충신 마애비는 조선 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활동한 전주 이씨 가문 충신들의 정려를 바위에 새긴 것이다. 윗부분에 ‘전주 이씨 육충지려(全州李氏六忠之閭)’라고 가로로 새기고, 여섯 분의 충신 정려 내용을 세로로 차례로 새겨 놓았다. 육충신은 임진왜란에 창의하여 국왕을 호위하였던 이...
-
쌍봉사(雙峰寺)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 소재하며,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교구인 순천 송광사의 말사이다. 당에서 귀국한 철감 선사 도윤의 주석(駐錫)으로 9산 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초를 닦았다. 쌍봉사는 고려 시대 최씨 무인 정권의 비호를 받는 무진주[광주] 일대의 선종 대가람이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왕실의 지원을 받는 등 창건 이래 꾸준히...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천서(天瑞), 호는 낙재(樂齋). 구봉(九峯) 조엽(曺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정오(曺挺五)이며, 아버지는 조선춘(曺善春)이다. 조명옥(曺命玉)[1708~?]은 재주가 총명하여 10세에 문장을 지을 줄 알았다. 1753년(영조 29)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1762년(영조 38)에...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선우(善遇), 호는 삼계(三溪)·일휴당(日休堂). 고려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16세손이고, 최혼(崔渾)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 승지(承旨)인 최윤범(崔尹範)이고 아버지는 증 영의정 최천부(崔天符)이며 부인은 나주 김씨 김원(金遠)의 딸이다. 최경회(崔慶會)[1532~1593]는 1548년(명종...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쌍봉사는 동리산문(桐裏山門)의 개산조(開山祖)인 적인 선사(寂忍禪師) 혜철(惠哲)이 839년 2월에 중국에서 귀국하여 최초로 하안거(夏安居)를 지낸 곳이 무주(武州) 관내 쌍봉사라는 견해가 있어 이에 따르면 839년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철감 선사 도윤(道允)[798~86...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는 칠송(七松)·새터·회화(會話)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회송리의 지명은 회화 마을의 회(會)자와 칠송 마을의 송(松)자를 한 자씩 취한 것이다. 회화 마을은 원래 안해하리로 불렀고 밖회화리[춘양면 양곡 2리 해하 마을]와 함께 회화리를 형성하고 있었으나 마을이 커지면서 안...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 칠송 마을을 중심으로 세거하는 공주 이씨 집성촌. 칠송 마을은 원래 연못의 자리에 토사가 오래 쌓여 형성되어 이루어진 마을이다. 처음에 담안이라 했는데 영조 때에 이생, 오태유, 윤인을, 김흥렬, 남습, 박좌수, 고씨 등 7성씨가 홍수 피해를 방비하기 위해 제방을 쌓고 제방 위에 수목을 심을 때 일곱 소나무를 심어 칠송(七松)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