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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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19세기 조선은 관료들의 수탈로 인해 농민 경제가 악화되었고, 1876년 일본과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후 조선에 대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심화되었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은 실학·동학·천주교 등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 혼재된 시기를 맞이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기존의 성리학을 비판하며 당시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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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을 거쳐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광주광역시 광주 송정역 사이에 부설된 철도. 경전선은 우리나라의 남해안을 동서 방향으로 횡단하는 철도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연결한다. 총연장은 300.6㎞이다. 경전선의 부설 공사는 호남의 종관선부터 착수하였는데, 1936년 12월 송원~순천 구간이 준공됨으로써 전주~순천의 130여 ㎞가 개통되었다.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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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에 있는 구암정을 짓고 문사신이 읊은 한시. 한시 「구암정을 짓고서」의 작가 문사신(文思臣)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출신으로, 본관은 남평, 자는 태수(台叟), 호는 구암(龜巖)이다.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민묵재(敏黙齋) 문계상(文繼相)이다. 시의 배경 정자인 구암정은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 호동에 있다. ‘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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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는 정자·교촌·남평거리·봉룡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남정 마을·종방 마을은 남정 1리, 봉룡 마을은 남정 2리이다. 남정리의 지명은 남평거리 마을의 남(南)자와 정자촌 마을의 정(亭)자를 각각 취하여 만든 것이다. 정자촌 마을은 정잿몰이라 하는데 마을에 큰 정자나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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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2월 3일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동학 농민군이 인근 남평 관아를 공격해 점령한 사건. 1894년 최경선(崔景善)[1859~1895]·손화중(孫華仲)[1861~1895]에 의해 시행된 나주 공략의 실패로 능주와 남평 일대에 흩어져 있던 동학 농민군은 남평 관아를 급습하여 잠시 동안 관아를 장악했다. 1894년 9월부터 11월까지 나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동학 농민군의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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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대 두 번의 사화로 타격을 받은 사림파의 정치 재개는 중종반정(中宗反正)과 조광조(趙光祖)[1482~1519] 중용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조광조는 아버지의 임지인 평안도 희천에서 유배 중인 김굉필 문하에서 수학한 후 성리학 연구에 힘을 써 왕도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개혁 정치를 주도하다 실패한 인물이지만, 그의 정치사상은 16세기 도학 사상가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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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니는 비교적 큰 길. 화순군은 북쪽에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담양군, 서쪽에 나주시, 동쪽에 순천시, 남쪽에 보성군과 장흥군이 접해있어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한 도로망을 가지고 있다. 2011년 현재 화순군에는 일반 국도 3개 노선, 국가 지원 지방도 2개 노선, 지방도 7개 노선, 군도 15개 노선이 분포하고 있다.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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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천변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동광주 노회 화순 시찰 소속 교회. 1907년 배유지, 오원 선교사의 전도 활동으로 먼저 몇 명이 믿었고, 신자가 늘어나 예배당을 신축하여 동복군 읍내면 칠전리에 칠전리 교회를 세웠다. 1912년 남평과 동복 순회 구역은 노라복 선교사가 책임자였다. 1913년 동복 교회와 그 일대가 노라복 선교사 순회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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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발생하고 12월까지 이어진 나주 공략이 실패하면서 동학 농민군 일부가 화순 지역과 그 인근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그 중 최경선(崔景善)[1859~1895]의 지휘를 받은 농민군이 인접한 남평 관아를 일시 점령하기도 했으나 곧 이은 나주 수성군(守成軍)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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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화순 출신의 학자이자 선행인.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인좌(仁佐), 호(號)는 농은(農隱).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문기림(文琦林)이다. 문계환(文啓煥)[?~?]은 품성(稟性)이 강직(剛直)하고 풍모가 있으며 도량이 컸다. 부모를 정성으로 봉양하고 선조의 업[유학]을 잘 계승했다. 농민의 복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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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성화(聖和), 호(號)는 둔계(遯溪).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문사신(文思臣)이다. 문명규(文命圭)[?~?]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었다. 어버이가 병이 나니 천태산에서 약을 찾아다니다 산삼을 얻었다. 기뻐하며 부모님께 드리니 묵은 병이 즉시 나았다. 부모의 상(喪)을 당하고 묘 곁에 움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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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능주 월곡리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초명은 문상항(文尙恒), 호는 월곡(月谷). 강성군(江城君) 문익점(文益漸)의 현손(玄孫)으로, 아버지는 현감 문염(文琰)이다. 문상행(文尙行)[?~?]은 출사하여서는 나라의 인재가 되고 돌아와서는 유학의 종장이 되었다. 김숙자(金叔滋)와 종유하였으며, 1411년(태종 11) 태종(太宗) 때 진사시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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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공옥(攻玉), 호는 죽계(竹溪). 충선공(忠宣公)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 문효원(文孝元)이고, 아버지는 생원 문윤승(文允承)이며, 어머니는 진주 하씨이다. 문석생(文石生)[1601~1636]은 지용(智勇)과 기우가 남달리 뛰어났으며, 일찍부터 무예에 관심이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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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성화(聖化).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예로 증 공조 판서 문이망(文以望)의 아들이다. 문세인(文世仁)[?~?]은 품성(稟性)이 온후(溫厚)하며 나이 90이 넘었음에도 강장무양(康壯無恙)하니 영조 조에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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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국노(國老), 호는 삼계(三溪).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문덕망(文德望)이다. 문세정(文世禎)[1638~1708]은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천품이 청수하고 재예가 총민하였으며, 문장을 일삼지 않고, 성리학에 잠심하여 연구함에 조예가 깊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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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계원(啓元), 호는 구암(龜巖).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문치욱(文致郁)이고, 어머니는 양상기(梁相基)의 딸이며 부인은 박홍현(朴弘鉉)의 딸이다. 문송규(文頌奎)[1859~1888]는 화순 출신으로, 사람들이 신동이라고 일컬었다. 하락이수(河洛理數)[개개인의 품성과 운명에 대한 연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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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사규(士圭), 호는 경묵재(敬黙齋).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증 참판(參判) 경직재(敬直齋) 문필진(文弼鎭)이다. 문영찬(文永瓚)[?~?]은 타고난 품성이 영오(穎悟)하고 효도와 우애를 다 갖추었고 부귀영달에 힘쓰지 않고 오로지 경학(經學)에 전념했다. 향교 문묘(文廟)의 집기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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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도숙(道肅), 호는 면수재(勉修齋). 강성군(江城君)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경숙공(敬肅公) 문상행(文尙行)이고, 아버지는 문목(文穆)이며, 어머니는 여산 송씨(礪山宋氏) 송양승(宋良升)의 딸이다. 문자수(文自修)[1420~?]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6세에 효경에 능통하고, 문사(文詞)가 부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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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경오(敬五), 호는 모암(茅巖).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묵헌(默軒) 문병환(文炳煥)이고, 어머니는 죽산 안씨(竹山安氏)이다. 문재희(文載熙)[1868~1941]는 타고난 자질이 강직하고 명백하며, 총명과 지혜가 뛰어났다. 7세에 능히 문자를 알았으며, 면암 최익현(崔益鉉)에게 나아가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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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자공(子恭), 호는 해은(海隱).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문홍수(文弘受)이다. 문제극(文悌克)[?~?]은 안방준(安邦俊)의 문인(門人)으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안방준의 휘하에 종군하여 큰 도움을 주었다. 여산(礪山)에 이르렀을 때 강화(講和)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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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여징(汝徵), 호는 경암(敬菴)·송계(松溪). 충숙공(忠肅公)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문검(文儉)이고, 어머니는 청주 한씨로 예조 판서(禮曹判書) 한엽(韓曄)의 딸이다. 문홍헌(文弘獻)[1551~1593]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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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강정리에서 살았던 박 부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박 부자와 개 이야기」는 박팔만이라는 부자가 집에서 키우던 개가 밤마다 짖는 이유를 알지 못해 죽이고 후원에 있던 구렁이를 죽이려다 뱀에게 물려 죽은 후 그 집안 역시 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박 부자와 개」라는 제목으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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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천암리에 있는 문재희의 강학소. 문재희(文載熙)[1868~1941]가 강학의 장소로 사용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자는 경오(敬五), 호는 모암(茅菴),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며, 묵헌(黙軒) 문병환(文炳煥)의 아들로서 최익현(崔益鉉)의 제자이다. 백암 정사는 백암사(白巖祠)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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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부곡리에 있는 문달환의 문인이 건립한 정사. 문달환(文達煥)[1851~1938]이 만년에 학문에 힘을 쏟았던 곳으로, 문달환의 문인들이 세웠다. 자는 덕경(德卿), 호는 둔재(遯齋)이고,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부곡리에서 태어났다. 면암 최익현의 문인으로서 1906년 4월 무성 서원에서 최익현이 의병을 모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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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에 있는 문세정의 강학소. 삼계정사는 문세정(文世禎)이 후진을 양성했던 강학소이다. 자는 국로(國老), 호는 삼계(三溪)이고,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당시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당하거나 사사(賜死) 당하던 때 도내의 유림을 대표하여 상소문을 올렸다가 화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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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양제용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공(汝恭), 호는 칠송(七松).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봉사(奉事) 양산욱(梁山旭)이다. 양제용(梁悌容)[?~?]은 1627년(인조 5)에 발발한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거의(擧義)하여 근왕(勤王)한 바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옥과 현감(玉果縣監) 이흥발(李興浡)과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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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문자 기록이 있는 역사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선사 시대의 경우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중기인 약 5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삼한 소국들이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데,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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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성씨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과 속성(續姓)이다. 이 가운데 토성은 각 지역에 오래전부터 토착하고 있으면서 고려 시대 지방 행정 실무를 담당하고 지배 세력을 배출하던 성씨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토성 출신의 인물은 지역의 읍사(邑司)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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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중앙에 위치한 군. 화순군에는 행정 구역상 1개 읍, 12개 면, 188개 법정리[341개 행정리]가 있다. 화순군청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훈리에 위치해 있으며, 2013년 현재 1개 실, 13개 과, 2개 직속 기관, 1개 사업소, 13개 읍·면, 1개 출장소로 구성되어 있다. 화순 지역은 조선 시대 화순현·능주목·동복현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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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과 도곡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비봉산 일대에 위치한 산성. 산성은 산세를 따라서 산에 쌓은 성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잘 발달되어 현재 중부 이남에만 1,200여개의 산성 터가 남아 있다. 산성은 평상시에 군창(軍倉)을 두고 여기에 곡식과 무기를 준비하여 두며 적이 침입하여 오면 평지의 주민들을 모두 들어오게 하여 농성하는 곳이다. 성이 위치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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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동면·이서면 일대를 관할하던 옛 행정 구역. 화순현은 940년(고려 태조 23)에 여미현을 화순현으로 개칭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고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1407년(태종 7)~1416년(태종 16)에는 복순현과 합속되었고, 1416년(태종 16)~1418년(태종 18)에는 순성현과 합속되었으며, 1594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