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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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伽倻琴散調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집필자 | 이용식[李庸植]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기악 독주 음악.
[개설]
가야금 산조는 장구 또는 북으로 반주한다. 1968년에 가야금 병창과 함께 중요 무형 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가야금 산조는 장단에 의해 몇 개의 악장으로 구성한다.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기본으로 유파(流派)에 따라 엇모리, 굿거리, 휘모리, 단모리, 세산조시 등을 넣기도 한다. 가야금의 악조(樂調)는 계면조, 우조, 평조 외에 경드름[경조], 강산제, 봉황조 등을 넣기도 한다.
[가야금 명인들의 활동 무대, 화순]
화순은 가야금 산조의 초창기 태동 과정에서부터 발전 과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명인들이 활동했던 주무대이다. 가야금 산조는 19세기 말에 전라남도의 가야금 명인들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영암의 김창조(金昌祖)[1856~1919]를 가야금 산조의 효시로 여기기도 하고, 화순의 한숙구(韓叔求)[1865?~?]가 김창조와는 별도로 가야금 산조를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다고도 한다. 한숙구는 전라남도 해남 출신이고, 조선 후기의 명인이었던 신방초(申芳草)와 이장선(李壯善) 등에게 해남 등지에서 풍류를 사사하여 일가를 이루었으며, 대금과 피리도 잘하였다.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용리에 거주하면서 주로 활동을 했고 제자를 양성했다.
한숙구의 가야금 산조는 화순 지역을 중심으로 20세기 전기에 크게 발전했다. 한숙구의 아들인 한수동(韓壽同)[1895~1940] 외에 일제 강점기 가야금 명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성기(韓成基)[1899~1950]·정남옥(鄭南玉)[1902~?]·안기옥(安基玉)[1894~1974] 등에게 전해졌다. 화순 출신의 중요 무형 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였던 정달영(鄭達榮)[1922~1997]은 정남옥에게서 한숙구제 가야금 산조와 병창을 배워서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고 한다.
[가야금 산조 명인]
화순군 출신의 가야금 산조 명인으로 2010년에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제47호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 예능 보유자로 지정된 선영숙을 들 수 있다. 선영숙은 1960년대 가야금 산조에 입문한 이래 강문득 선생으로부터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를 온전하게 전수하였고, 그 기량을 인정받아 2005년 전국 국악 대전 현악 부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영숙은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서 거주하며 지역민들에게 국악 보급은 물론이고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를 잇기 위한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선영숙은 지난 2002년 문을 연 ‘(사)호남 연정 국악 연수원’ 이사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