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8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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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神廳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74-1[잠정리 228] |
집필자 | 이경엽 |
최종 소재지 | 능주 신청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74-1[잠정리 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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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에 있는 전통 예술 보존 및 계승 단체.
[개설]
신청(神廳)은 무부들의 조직체로서 무속 집단의 결속 강화와 권익 보호, 상호 부조, 전통 예술 교육 등의 기능을 담당했다. 또한 관아의 각종 행사에서 연주와 연희를 담당했다. 이런 기능은 신청 사람들이 무속 활동을 하면서 더불어 관아의 행사에 맞춰 공연 활동을 했던 사정과 관련 있다.
신청은 조선 시대의 군현 단위에 설치되었으며 전국적으로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판소리, 산조, 농악 등 전통 예술 전승의 중심 역할을 하던 기관으로 지금의 국악원과 비슷한 기능을 담당했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는 능주 신청이 있었다.
[변천]
능주 신청은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74-1[잠정리]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없어졌다. 당시 신청을 관리하던 조종엽[일명 조떼깔]이 일본인의 손에 신청 부지가 넘어가자 선생안[윗대 신청 어른들의 위패]을 영벽정 아래 강가에서 불태웠다고 한다. 이로써 능주 신청의 공식 활동은 마감됐다. 하지만 신청에 출입했던 예인들의 활동은 꾸준히 지속되었다.
[주요 활동과 인물]
능주 신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이들은 무계(巫系) 출신 예인들로 대표적인 인물이 조종률(曺鍾律)이다. 그는 신청의 우두머리인 대방(大房)을 지냈다. 그의 형제인 조종언과 조상엽[조종엽]은 각각 줄타기와 대금의 명인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아랫대의 인물인 조몽실과 조동선은 판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
조씨 무계 외에 김씨와 정씨, 안씨, 오씨 등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별호가 있어서 예명처럼 사용해왔다. 대표적인 인사로는 대자, 유백이, 김막동 형제, 정막동이[정달영] 등이 있었다. 대자는 피리 잽이로 유명했으며 그의 동생 유백이도 악기에 능했다. 최근에 작고한 대자의 아들 김용철은 아쟁 명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막동과 김복동 형제는 각각 대금과 피리 잽이로 이름을 날렸다. 정막동이란 별호로 불리던 정달영은 무형 문화재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정달영은 자신의 숙부이자 한숙구의 제자인 정남옥에게 가야금 산조와 병창을 사사하고, 오태석에게 가야금 병창을 사사했다. 창극단과 국극단에서 연주 활동을 하다가 1988년 중요 무형 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신청은 전통 예술 전승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곳이다. 지역의 전통 예술을 일구고 계승하던 예인들의 공동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