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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 갱변에 열린 시골 장터, 이서 오일장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A010303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도석리 이서장이 야사 마을 갱변으로 이전 1984년 - 도석리가 동복댐 3차 확장 공사로 수몰되면서 도석리 이서장이 야사 마을 갱변으로 이전하게 된다.
마을지 야사제1교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마을지 갱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마을
마을지 화순장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야사 마을 갱변에서 열린 이서장]

야사 마을로 들어서기 전 야사제1교 왼편으로 공터가 보인다. 버스 정류장 좌측이 강변이다. 1984년부터 재래시장인 이서장이 서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도석리 이서장터를 중심으로 번화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서장을 이용하던 인근 마을들이 3차에 걸친 동복댐 공사로 수몰되면서 도석리에 있던 이서장[방석굴장]도 수몰되었다.

“도석리에 있던 이서장은 겁나게 장이 컸는데, 담양 남면서도 오고, 이서서도 화순에서도, 참 장이 컸어요. 소시장도 있어서, 북적대며, 돈도 많이 돌았어요.”(나금연, 최병하)

이후 이서장은 이곳 야사 마을 갱변으로 이전되어 왔다.  야사 마을로 옮긴 이서장도 5일에 한 번 서는 오일장이었다. 인근의 장들은 서로 날짜를 피해가며 5일마다 장이 섰다. 이서장은 4와 9가 들어가는 날짜에 서는 4,9장이다. 화순군에서는 화순, 능주, 남면 이양, 춘양, 동복장과 함께 2,000여명이 이용할 정도의 큰 장이었다. 장날이 되면 인근의 온 산천이 활기 넘치는 것이 시골 장터의 정취다. 상인들은 7시도 되기 전에 나와서 추위를 녹이기 위해 장작불을 피우며 막걸리도 한 잔씩 나눠 마셨다. 산골마을이고 이른 아침에 장이 서다보니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국물의 동태탕 같은 해물이 인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많이 이용하던 것은 농기구를 팔던 철물점이었다고 한다. 농약, 씨앗, 옷, 신발도 있었다. 먹거리는 당연하고, 특산품으로 누에가루와 영지버섯이 거래되었다. 그 당시 야사 마을은 누에보다 영지에 주력했었다.

[이서장은 시대의 흐름에 사라지고…]

산골이지만, 장날이면 인근에서 모여든 사람과 물자로 얼마나 풍요를 구가했을지 짐작이 된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에 말부터는 이용자가 줄어들었고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들썩이던 장터는 반나절만 반짝 섰다.

이후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연쇄점과 마트의 등장은 장터 사람들을 도시로 유인해 갔다. 교통의 발달로 5일이나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이 필요하면 언제나 마트로 나가면 되었다. 그렇게 철물점만 끝까지 갱변 장터를 지키다가 급기야 2003년경에는 쓸쓸하던 이서장도 서지 않게 되었다.

“요 다리[야사제1교] 건너 냇가 쪽 갱변으로 장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없어 장이 안 서. 여기만 보고 안 오니까, 다 화순으로 나가잖아요.”(나금연)

[시골장터의 추억을 찾아 화순장을 찾는 마을 사람들]

시골 오일장은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고, 소식을 주고받는 장소이다. 무엇보다도 돈 생길 일 없는 시골에서 쌈짓돈을 만질 수 있다. 오래된 이들과 술잔도 기울일 수 있다. 자식이나 손주에게 선심도 쓸 수 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콩 한 되 팥 한 되 들고 이서장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서장이 쇠락해지자 마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화순장까지 먼 길을 가야 한다. 불편함이 앞서고 흥이 나는 곳도 아니다. 그래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쌈짓돈을 위해, 어르신들은 장날이면 화순장을 찾는다.

“암만해도 여기서 장이 설 때는 경제적이고 사람이 모여싸면 좋지 않습디요. 지금은 우리가 나가야 하니까. 장 설 때는 인자 가을이면 콩 한 되, 팥 한 되 들고 가야지 어짜 겄소. 할매들이 돈 만들라면 화순장으로 차 타고 가.”(나금연)

거동이 불편하고, 오락거리가 없는 산골마을 어르신들에게는 가까이에 있는 오일장 장터가 유일의 경제요, 오락이요, 정보의 장이었던 것이다. 2013년 봄, 갱변에 노랗게 핀 개나리를 보며 마을 사람들은 이서장과 함께 누리던 풍요로움을 회상하며 화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정보제공]

  • •  나금연(여, 1936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주민)
  • •  이순준(남, 1955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전 이장)
  • •  최병하(남, 1960년생, 화순 이서 우체국장)
  • •  하태호(남, 1929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주민,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전 잠업 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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