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513
한자 古墳
영어공식명칭 Gobu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시대 고대/삼국시대/백제
집필자 성부제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에 있는 고분.

[개설]

고분(古墳)은 일반적으로 옛날 무덤 중에서도 역사적 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있는 무덤만을 가리킨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모든 고분은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옛 무덤은 모두 고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지하에 시신을 매장하고 지상에 아무런 시설을 두지 않은 것을 묘(墓)라고 하고, 반대로 지상에 흙을 쌓아 올려서 시설을 설치한 것을 분(墳)이라고 하여 묘와 분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두 묘로 통일하여 부른다. 일본에서는 시신을 지하에 매장하고 위에 흙을 쌓아 올린 시설을 묘라고 한다. 고분은 일반적으로 고대의 분묘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고고학에서는 흙 또는 돌을 쌓아 올린 분구가 있고, 내부에 유해 매장을 위한 시설을 갖고 있는 시설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산 지역의 고분]

예산 지역에는 여러 고분이 남아 있다. 대흥 동서리 고분은 1978년 사방공사를 위한 석재 채취 중 우연히 발견된 후 유구 조사를 위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유구 대부분이 파괴된 이후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조사되었다. 발견 당시 목격자들에 의하면 20~30㎝ 정도 크기의 활석으로 된 밑바닥 지름 2척[약 60㎝] 정도의 적석부(積石部)가 있었으며 적석부 아래는 30㎝ 정도 두께의 고운 토층과 토층 아래는 판석으로 된 직사각형 석관이 있었다고 한다. 석관의 판석을 들추던 중 유물이 수습되었고 재조사가 이루어 졌을 때 유물들은 원래 자리에서 모두 이탈된 상태였다. 돌널무덤은 뚜껑돌은 보이지 않고 적석부만 남아 있었으며 보고자에 의해 목관과 목곽이 있었다고 추정되었다. 무덤구덩이의 장축은 정확히 동서로 있었고 규모는 가로 180㎝, 세로 90㎝, 높이 60㎝ 가량이었다. 벽석재는 30~40㎝의 네모난 모양에 두께 5~8㎝ 정도의 표면이 고른 활판석이었고 무덤구덩이의 벽과 바닥에는 회백색 모래흙이 있었다고 한다. 수습 유물은 동검, 비파형동기, 나팔형동기, 청동거울 수 점과 원개형동기 1점, 관옥 및 소옥 126점, 마제석촉 7점분, 흑색장경호 1점, 점토대토기 1점등을 수습할 수 있었다. 1960~1970년대까지도 대흥 지역은 고분 도굴이 심하여 상중리, 동서리, 교촌리 일대 많은 고분이 도굴되었다고 한다. 이외 대흥면 지역에서 대야리 고분이 발견되는데 1950~1960년대 도굴꾼들이 많이 훼손하였고 현재 일부 석재가 남아 있다. 신속리 백제 토성과 가까워 백제시대 고분으로 추정된다.

예산읍 산성리 고분은 현재 예산종합터미널 부근 공동묘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을 파낸 자리다. 지하 1m가량 되는 곳에 규모는 가로 180㎝, 세로 160㎝, 높이 90㎝ 바닥은 강돌로 깔았고 배수구가 있었다. 측면 대판석은 가로 120㎝, 세로 120㎝, 두께 15㎝ 가량이었고 덮개돌은 길이 2m가량, 폭 40㎝가량 되는 돌 3개였다. 대판석 옆은 할석으로 채웠다. 당시 묘역에서 출토된 돌의 양은 3톤 정도였다. 훼손 당시 묘역에서 10m 정도 벗어난 지역에 덮개돌이 치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미 도굴된 상태였고 흙이 채워져 있었다.

예산읍 석양리 고분군은 석양리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은 지형으로 능선을 따라 무수한 고분이 출토되었다. 1960~1970년대 돌들이 구들장용으로 당진·온양·천안 지역까지 공급되었다. 관작리, 수철리까지 많은 바위들이 구들장용으로 사라졌다. 1995년경 주민 탐문 조사 결과 놋대접, 놋수저 등이 나왔고 일부 옥 종류도 있었는데 돌칼, 돌화살촉은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현재 성안 마을에 고분이 노출되어 있고 농지 확장 시 토성 벽을 밀어내고 수많은 고분 돌들을 밀어냈다.

신양면 황계리 다박골 고분은 1995년 공주대학교 박물관 측 조사로는 백제 고분으로 조사되었다. 옆은 채석된 돌로 가지런히 쌓여 있고 덮개돌은 하나가 덮여 있다. 양지바른 지역으로 일제강점기부터 도굴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 개간으로 과수원을 일구며 고분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과수원이 폐원되면서 고분 돌이 차량에 의해 모두 실려 나갔음을 확인하였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묘를 쓰는 과정에서 돌칼이 수습되었고 놋대접, 수저 등도 발견되었고 돌화살촉도 수습되었다고 한다. 묘제에 쓰인 돌은 바로 앞산과 산밑에서 채석하였다. 1995년 산 능선에 수많은 파괴된 고분이 즐비하였는데 현재는 나무가 우거져 찾기 힘들다. 신양면 만사리·신양리·서계양리 등에 고분이 즐비하였고 서계양리에서는 돌화살촉, 돌칼이 다수 수습되었다.

고덕면 사리 고분은 백제 현치소 지역인 금물현이 가까운 지역이라 고분이 축조되었다. 최근에 사리에서 백제 고분이 많이 발견되었다. 광시면 노전리 안골은 백제시대 고분으로 조사되는데 5~6기가 있었다고 전한다. 광시면 지역 시대 미상의 고분은 구례리 절골, 미곡리 갓점마을에서 발견된다. 덕산면 지역은 광천2리, 둔리 윗가루실, 상가리 사기점골, 사동리 사직동, 시량리 각골 등에서 발견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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