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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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 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냉굴은 삼복더위에도 에어컨, 선풍기가 필요없는 천연 피서지이다. 35℃를 웃도는 한여름 대낮에도 이곳의 온도는 17℃를 넘지 않는다. 동굴 안에서 물과 함께 서늘한 바람이 품어져 나오기 때문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겹쳐 입을 옷을 찾게 된다. 냉굴은 여름에는 찬바람을 내뿜어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반대로 찬바람이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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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에 석탄 산지가 있다면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한다. 전라남도 지역은 녹색과 황금 들녘의 전원 풍경이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색의 땅 전라남도에 검은 탄광 마을이 존재한다. 고생대 석탄기층의 평안계 사동통이 분포하여 전라남도 유일의 화순 탄광을 형성한 것이다. 화순 탄광의 탄층은 지질적으로 고생대의 구 사동퉁(寺洞統)에 대비되는 오산리층·화순층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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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 마을 회관에서 동림 마을로 향하다 보면 왼편에 널찍한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 한 끝 스탠드에는 ‘화순 광업소 운동장’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보인다. 높이 쳐진 그물망 안으로 스무 명 남짓 되는 야구 선수들이 열심히 연습 중이다. 하얀 운동복에 빨간 모자가 활기차 보인다. 사람도 드문 이곳에 이토록 큰 운동장이 왜 필요했을까? 광업소 종사자들의 여가와 건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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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가 풍부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누구나 허기를 반찬삼아 곯은 배를 채웠으며, 맑은 물에 몇 가지 건더기를 넣고 끓인 죽과 국으로 배를 채웠다. 탄광 마을 사정도 비슷해서 노동자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것들에는 시래기죽, 시래기밥, 김치죽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처럼 밥에 시래기나 김치를 넣고 푹 끓인 단순한 요리지만 탄광노동자들에겐 노동의 단맛이 한 그릇 가득 담긴 먹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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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하면 연상되는 것이 검은 흙, 석탄, 탄가루 등 주로 검은 색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탄광 마을과 사람들도 무채색 빛 애환이 담긴 삶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화순 광업소와 탄광 마을 사람들은 한때 산업 전사로서 지역 경제를 이끌었고, 버거운 환경에서도 활력 있는 삶을 살았다. 특히 석탄 산업 경기가 호시절이던 1970~80년대에는 화순 광업소 월급날이면 마을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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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읍에서 국도 22호선을 타고 가다가 충의로로 접어들어야 탄광 마을에 이르게 된다. 호남정맥 길목답게 충의로 주변의 산세는 높다. 도로 오른편으로는 화순천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푸른산, 맑은 물, 논밭이라는 농촌 경관과는 사뭇 다르다. 도로변 주택들도 빛바랜 회색으로 활기를 찾아볼 수 없다. 천운 마을에 다다르니 아파트까지 눈에 들어온다. 일련의 경관들이 탄광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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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산업 현장에는 크고 작은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작업 현장이 인위적으로 뚫어 만든 지하 수백 미터 깊은 굴속이기 때문이다. 안전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한다. 하지만 아직도 갱도 확보를 위한 발파 사고, 갱도 붕괴, 채탄, 운반 과정에서 여전히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잡념을 버리고, 서두르지 말며,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버린다. 우리는 나의 안전, 동료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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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 마을 회관 안에 할머니들 대여섯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화투를 치고 있다. 겨울이면 어느 시골 마을 회관에 가더라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곳 탄광촌인 천운 마을도 다르지 않았는데, 그 속에 정정남 씨도 한 자리 하고 앉아 있다. 정정남 씨는 연장자인 할머니들이 화투치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하는 정도지 화투판에 끼지는 않는다고 한다. 정정남 씨는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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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네 씨는, 젊은 시절에 읍내라도 나갈 요량이면 미용실에 들러서 ‘고대’를 했다. 고대는 젓가락처럼 생긴 도구를 불에 가열해서 머리카락을 둥글게 마는 것을 말하는데, 마을 안에 미용실이 두 개나 있어서 천운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근 시골 마을에서도 머리를 만지러 왔다. 당시에 천운 마을 여자들이 미용실에서 ‘고데’를 하고 외출을 했다면, 남자들은 양복점에서 맞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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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면 오동리는 천운동·오곡(梧谷)·동림(桐林)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오동리의 지명은 오곡 마을의 오(梧)자와 동림 마을의 동(桐)자를 각각 취하였다. 천운동 마을은 원래 오곡 마을의 일부로 도로반이라 불렀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석탄 개발과 함께 개발의 붐이 일어났고 당시 외부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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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 마을 정종근 씨는 오늘 아침에도 화순읍에 있는 병원에 가서 약을 타왔다.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에 다니면서 얻은 진폐증으로 매달마다 엑스레이도 찍고 약도 타와야 한다. 정종근 씨는 1933년에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다 중간에 군대를 다녀온 탓에 남들보다 늦은 스물여덟 살에 결혼했다. 당시 신부 송용남 씨는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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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 동면 지도를 들여다 보면, 여느 전라남도 지역과는 다르다. 촘촘한 등고선이 이어지고, 화순천이 그 사이에 겨우 물길을 낸다. 말 그대로 산간 오지이다. 그런데 충의로와 화순선 철도를 따라 제법 큰 마을들이 이어진다. 탄광 마을들이다. 탄광 마을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척박한 토양과 경작지가 좁은 오지인데도,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단다. 다양한 성씨의 외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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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천운 마을 회관이 바로 눈앞에 들어온다. 마을 입구 양쪽으로 넓은 공터가 있고 마을 회관이 마을의 가장 앞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마을 회관 입구에서부터 동네 주민들의 신발이 한 가득이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 보니 천운 마을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일정표와 함께 마을 소식들이 빼곡하게 적혀있고,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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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에 있었던 극장. 천운장 극장은 마을 이름을 따와 부른 것으로 공식명칭은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이다. 천운장 극장은 화순 광업소에서 1㎞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였다. 화순 광업소 복지문화관을 천운장 극장으로 칭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화순군 동면 오동리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 화순군 동면은 화순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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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하루 전인 음력 1월 14일, 이날은 천운 마을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굴암제를 지내는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천운 마을 회관에 모인 주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한쪽에서는 풍물패들이 고깔의 색색종이를 펴고, 옷매무새를 만지며 악기를 점검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장만한 제물(祭物)을 챙기고 옮기느라 바쁘다. 굴암제를 지내는 시간이 가까워지자 풍물패들이 천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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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충의로를 따라 달리는 길은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르지 않다. 녹색의 들녘과 푸르른 산새를 지나는 바람이 시원하다. 그러다 천덕1교를 지나 넘은골을 오르면 도로 양쪽으로 검은 흙과 경석더미가 눈에 들어오며, 내리막 지점에 화순 광업소가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전라남도 유일의 탄광,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이다. 고생대 석탄기층의 평안계 사동통이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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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 마을 최병철 이장은 1953년에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홉이나 되는 자식들을 두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어머니 혼자서 자식들 키우고 생활을 꾸려가다 보니 그 고생이야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최병철 씨는 열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버렸다.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와 혼자 살아가게 된 최병철 씨는 전국 각지 안다녀본 곳이 없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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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에서 충의로를 따라 동면으로 진입하면 천운 마을이다. 충의로 길가의 퇴색한 건물들과는 달리 천운 마을 표지석, 버스 정류장이 깔끔하고 조경도 잘 되어 있다. 천운 마을 회관 앞 양쪽으로는 너른 터가 펼쳐져 있다. 빈 터는 1980년대까지 번창했던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천운[장] 극장]과 천운장이 있었던 자리이다. 천운 마을에서 오동 마을로 연결된 길을 중심으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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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 마을 조효순 부녀회장은 1953년 화순군 동면 서석리에서 2남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친정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지만, 어머니가 ‘가슴앓이’를 앓고 있어서 아홉 살 때부터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밭 매고 물 길어서 밥도 해서 식구들 저녁도 차려야 했다. 어느 때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신을 불러내서 기어코 일을 시키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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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 마을에서부터 화순 광업소까지 충의로를 따라 가다보면 길 양쪽으로 문이 닫혀있는 상가들이 눈에 띈다. 도로를 따라 작지만 여러 채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양이 과거에는 번화했던 상점 거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호시절이었던 1970-80년대 화순 탄광 마을에는 직원들만 2,000여 명이 넘었고, 월급이 면서기보다 많았다. “남자 분들은 쌀 5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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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 동면 천운 마을로 다가가면, 입구에서부터 여느 촌락과는 다른 경관이 눈을 끈다.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아파트 때문이다. 화순군 면 단위 유일의 아파트 사택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깔끔한 조경과 산뜻한 천운 마을 표지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제 막 지나온 충의로 주변 회색과 검은 빛 경관과는 사뭇 다르다. 충의로에서 천운길로 접어들면 오른 쪽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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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 삼거리를 지나 구암 마을 언덕길을 오르면 ‘대한 석탄 공사 복지관’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표지판을 따라 간 길 끝에는 깔끔하게 정비된 3층 건물이 서있는데, 이곳이 바로 화순 광업소 객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한 석탄 공사 복지관’ 또는 ‘구암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대한 석탄 공사 직원들이 업무상 출장을 오거나 감사를 나올 때면 이곳 객관에서 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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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 마을 회관 안에 할머니들 대여섯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화투를 치고 있다. 겨울이면 어느 시골 마을 회관에 가더라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곳 탄광촌인 천운 마을도 다르지 않았는데, 그 속에 정정남 씨도 한 자리 하고 앉아 있다. 정정남 씨는 연장자인 할머니들이 화투치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하는 정도지 화투판에 끼지는 않는다고 한다. 정정남 씨는 젊은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