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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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衣生活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집필자 | 김은정 |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개설]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의생활 문화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의 의생활과 마찬가지로 현대화되어 있다. 현재 결혼식이나 상을 당할 때 입는 관혼상제 복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상복으로 서양복을 착용한다. 이에 화순 지역에서 50여 년 이상 거주해 온 주민을 대상으로 면담 조사를 하여 전라남도 화순군의 전통 의생활 문화와 현대 의생활 문화를 정리하였다.
[일상 복식]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는 집안 일이 많고 외부 활동이 적었던 여자의 경우 외출복이 따로 없었고 평상복인 치마와 저고리를 착용했다. 여자들의 평상복 복식인 저고리와 치마는 대부분 집에서 직조한 명베[무명]로 만들었다. 여름에는 모시와 마포(麻布)로 만들었고, 겨울에는 명이나 명주에 솜을 두어 집에서 직접 지어 입었다. 하의 속옷으로 몇 겹을 껴입기도 하였는데, 단속곳은 치마 바로 아래 입어 속치마를 대용하기도 했다. 남자들은 일상복으로 전통적인 한복 바지와 저고리에 고무신을 신었다. 겨울에는 무명에 솜을 두어 겹저고리나 겹바지를 입었으며, 겹바지 속에는 가랑이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홑바지를 입기도 하였다. 연세가 있는 노인들은 평상시에 연한 백색의 한복을 주로 입었다. 하지만 현재 여자들은 활동에 편하고 세탁이 용이한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기성복인 블라우스, 스커트, 바지, 원피스, 스웨터를 평상시에 편하게 착용하고 머리에는 모자를 착용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평상복으로 관리가 편한 모직이나 합섬 섬유 소재의 셔츠나 스웨터, 점퍼, 양복바지 등을 입는다. 이렇듯 현재의 화순 군민들이 입는 평상복은 전통 복식을 주로 착용했던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백일복]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 만에 입는 옷을 백일복이라고 한다. 과거에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백일복을 만들어 아이에게 입힌 경우는 각 가정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달랐다. 여유 있는 가정에서는 새롭게 짠 원단으로 새 옷을 지어 입히거나, 백일 전에는 흰 옷만 입히다가 백일 후에야 비로소 색상이 있는 옷을 입히기도 하였다. 생활이 어렵고 자식이 많은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입었던 옷을 잘라서 백일복을 만들었다. 대부분의 일반 가정에서는 백일이 되었다고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입던 옷들을 계절에 맞게 바꿔 입히는 정도였다.
현재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는 특별하게 집에서 백일복을 만들지는 않으며 기성복으로 판매하는 옷을 사거나 백일 기념으로 선물을 받아 입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돌복]
아이가 태어나 만 1세가 된 것을 기념하는 돌잔치 때 입는 옷을 돌복이라고 한다. 돌복을 입히는 것은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달랐다. 과거 돌복은 집에서 만들어 입혔는데, 여자 아이는 빨간색 치마와 노란색 저고리인 한복을 입히고 머리에는 조바위를 씌웠다. 남자 아이는 바지와 저고리를 입히고 그 위에 마고자를 입히기도 하고 금박이 인쇄된 전복을 입혔다. 하지만 현재 화순 지역에서는 특별하게 집에서 돌복을 만들지 않고, 전통 복식으로 제작하여 판매하는 돌복을 선물로 받거나 구매하여 입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혼례복]
혼례 복식은 사례(四禮)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통과 의례인 혼례 중에 착용하는 것이므로 다른 의례 복식에 비해 색상이나 형태가 화려하였다. 과거 전라남도 화순군 지역에서 착용했던 혼례 복식은 궁중 예복이었다. 신부는 예복으로 색동 소매 녹색 원삼을 입고 머리에 족두리를 썼다. 신랑은 조선 시대 문관과 무관의 관복인 단령을 입고 머리에는 사모를 썼다.
현재 전라남도 화순 지역 주민 대부분은 혼례식은 광주광역시나 인근의 대도시에 위치한 결혼식장에서 행하고 있으며, 혼례복으로 신랑은 검은색이나 백색의 턱시도 등의 양복을 입고, 신부는 백색의 웨딩드레스를 주로 입는다.
[상례복]
전라남도 화순 지역은 조상을 소중히 모시고, 돌아가신 조상께 예를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미로 전통적으로 수의와 상복을 갖추었다. 화순군 동면 강동리에 거주하는 정영심에 의하면, 상을 당하면 상주는 전통 상복인 굴건과 제복을 착용하였고, 딸은 광목으로 만든 한복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새끼로 꼰 수질(首絰)[머리띠]과 요질(腰絰)[허리띠]을 착용하였다. 사위나 일가친척은 광목으로 된 한복 바지와 저고리에 광목 두루마기를 입고 수질과 요질을 착용하고 상장(喪杖)을 짚었다. 최근에는 전문 업체가 맡아서 장례를 치루거나, 병원 영안실에서 상례 절차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병원에서 주문한 상복을 갖추어 입는다.
죽음을 맞이한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로 입혔던 수의는 윤달이나 손 없는 길일을 택해 미리 제작해 두기도 하였다. 이러한 수의는 대부분 광목이나 삼베와 같은 천연 섬유로 제작하였으나,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우평리에 거주하는 임복순[84세] 주민에 의하면, 가정 형편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착용했던 옷을 깨끗하게 빨아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장례 전문 업체에서 수의를 구입하기도 하는데 장례식장이나 병원의 영안실에서 염을 하는 절차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병원에서 주문한 상복을 갖추어 입는다.
[제례복]
화순군 동면 우평리의 이삼진과 화순군 동면 장동리의 문안춘에 의하면, 남자의 제례복은 한복 저고리와 바지 위에 백색 도포나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착용했다고 한다. 여자들은 깨끗한 무색[색이 없는] 한복을 입고 제례를 드리기도 하였으나, 음식 장만 등의 제례상 준비를 위해 일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현재도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많은데, 화순군 화순읍 대리의 문오순에 의하면, 현재의 제례 복식 형태는 가정 형편에 따라 남자들은 한복과 두루마기를 착용하기도 하나 대부분이 양복이나 일상복을 입는다고 한다.
[전통 염색]
염색은 천연 염색과 화학 염료를 이용한 염색 둘 다 사용하였는데, 전통 염색인 천연 염색 중에서도 식물성 재료를 이용한 염색이 대부분이었다. 천연 염색의 경우 주변에 나무들이 많아서 감 염색과 치자 염색이 주로 이루어 졌다고 한다. 감 염색은 떫은맛이 나는 6월부터 감을 수확하여 잘게 갈아서 염색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3번 정도 반복한다고 한다. 감 염색은 감 자체의 탄닌 성분 때문에 옷감이 질겨지고 염색의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과 더불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자주 사용되었다. 치자 염색은 짙은 노란색을 띄는 것으로, 치자 열매를 잘게 잘라 물에 넣어 끓여 염료를 만든 후 염색을 한다. 치자 염색의 경우 견뢰도(堅牢度)[굳고 단단한 정도]가 낮아서 명반과 같은 매염제(媒染劑)[물감과 섬유를 결합시키는 역할을 하는 화학제]를 첨가해서 견뢰도를 높게 하여 사용하였다.
[장신구]
화순 지역 주민들이 사용한 장신구는 빈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경우 시집올 마련한 은비녀와 은가락지를 하였다. 명절에는 댕기를 하거나 은비녀를 착용하였다. 가락지는 며느리에게 물려주기도 하였는데, 화순군 동면에 거주하는 손형선에 의하면, 대부분 마을 주민들은 혼수품으로 은가락지를 받았으며 비녀는 시집갈 때 하였다고 한다. 부유한 사람은 금반지와 노리개를 함에 넣어 신부에게 예물로 보냈다.
화순군에서 사용했던 장신구는 반지, 비녀, 댕기, 노리개 등으로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았다. 주로 혼수로 해 왔던 비녀가 많았는데 비녀의 사용은 긴 머리에 낭자를 했던 머리 스타일이 짧은 머리 등으로 바뀌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화순 지역에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수의에 대한 색다른 풍습이 있었다. 화순군 화순읍 대리의 김옥남, 조영혜는 친정 할머니가 수의로 입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원삼을 혼례복으로 입었다고 하였다. 이는 수의로 만들어 놓은 원삼을 3번 이상 혼례복으로 입으면 그 옷을 수의로 입은 사람에게 복이 온다는 속설에서 비롯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사라져 버린 길쌈은 지역 특산물로 화순군 동복면에서 마포(麻布)가 생산되고 있었고, 이러한 마포는 수의를 제작하는 소재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