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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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중 화순 능주 지역의 지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을 겪은 조선 사회는 18세기 영조와 정조 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각종 문물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농업 부문의 생산력 또한 높아지고 더불어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18세기에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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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중 화순 동복 지역의 지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을 겪은 조선 사회는 18세기 영조와 정조 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각종 문물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농업 부문의 생산력 또한 높아지고 더불어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18세기에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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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중 화순 지역의 지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을 겪은 조선 사회는 18세기 영조와 정조 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각종 문물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농업 부문의 생산력 또한 높아지고 더불어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18세기에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적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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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19세기 조선은 관료들의 수탈로 인해 농민 경제가 악화되었고, 1876년 일본과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후 조선에 대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심화되었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은 실학·동학·천주교 등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 혼재된 시기를 맞이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기존의 성리학을 비판하며 당시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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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화순 지역은 고려 전기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못한 곳이었으나, 인종 때에 이르러 능성현에 현령이 파견되고, 고려 말기에 동복과 화순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주현(州縣)으로 변모하였다. 통일 신라 후기에 들어서면서 각지에서 호족들이 중앙 정권에 반기를 들고 봉기하면서 후삼국 시대가 개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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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형씨 20대 종손인 형광호 씨 집에는 오랜 역사 속에서 영화로웠던 집안의 과거를 이야기해주는 많은 고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세종 때 형군철(邢君哲) 선대 할아버지가 받았던 교지이다. 형군철은 생원 진시 시험에 합격한 이들에게 내리는 교지인 백패와 과거 급제자에게 내리는 교지인 홍패를 받았다. 형군철은 1446년(세종 28)에 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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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비롯해 삼남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비밀 결사 조직. 대한 광복단의 화순 지역 활동가들은 주로 부호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여 국내 조직이나 해외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후속 단체인 대한 광복단 결사대의 한훈(韓焄) 등은 1916년 전라남도 보성 지역의 양재성(梁在誠)과 벌교의 서도현(徐道賢)을 처단했으며 서도현의 당질인 서인선을 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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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는 조선 시대에 국립 교육기관으로서 화순 향교(和順鄕校), 능주 향교(綾州鄕校), 동복 향교(同福鄕校)가 있어 유교 교육의 진작과 지방 문화의 발달에 기여하였다. 또한 사립 교육 기관으로 죽수 서원, 도원 서원, 해망 서원에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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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에 있는 구암정을 짓고 문사신이 읊은 한시. 한시 「구암정을 짓고서」의 작가 문사신(文思臣)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출신으로, 본관은 남평, 자는 태수(台叟), 호는 구암(龜巖)이다.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민묵재(敏黙齋) 문계상(文繼相)이다. 시의 배경 정자인 구암정은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 호동에 있다. ‘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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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 자연 경관 주변에 있는 누정은 예부터 자연 경관을 즐기고 이와 더불어 생활하고자 하는 유생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누정은 산 좋고 물 좋은 경관을 배경으로 휴식, 놀이, 강학 등을 위한 기능뿐만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며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였던 정신적 기능도 있었다. 야사 마을의 대표적인 실학자 규남(圭南) 하백원(河百源)[1781~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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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마을 뒷산기슭 절벽에 위치한 백파정(白波亭)은 김재탁(金再鐸)[1776~?]이 띠집을 지어놓고 소요하던 곳이다. 독무지길 뒤편에 있는 뒷산 자락에서 대밭을 따라 50여 미터를 오르면 오솔길 사이로 백파정의 아름다운 처마가 시야에 들어온다. 백파정 뒤는 암벽이 자리하고 있고 건물 아래에는 정천의 물줄기가 흘러간다. 백파정 주변으로는 노송 몇 그루가 서 있어 운치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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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때에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살인을 저지른 김정(金丁)과 금음동(今音同)을 참형에 처한 일. 조선 시대의 형법은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에 의거하여 집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명률에는 태·장·도·유·사의 5가지 형벌이 기록되어 있다. 태와 장은 죄인의 볼기를 쳤으며, 도형은 중한 죄를 범한 자를 관에 붙잡아 두고 힘든 일을 시키는 것으로 지금의 징역형과 비슷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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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전해오는 명풍수 남사고가 최부자에게 명당을 잡아주었다는 이야기. 조선의 명풍수였던 남사고가 화순으로 와서 당시 만석꾼 부자였던 최부자 집과 임씨 집에 가서 원하는 바를 얻고 그 대가로 명당자리를 잡아주었는데, 남사고가 전라도 관찰사의 딸을 첩으로 얻으려 했다가 후에 관찰사에게 맞아죽었다는 이야기이다. 명풍수인 남사고의 능력과 지나친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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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일을 할 때 입는 옷. 노동복은 노동할 때 입는 옷으로 생계 수단이 농사인 사람들은 평상복과 노동복을 구분하기 어렵다. 보통은 평상복으로 입는 옷 중에서 편하고 허름한 옷을 노동복으로 입었다. 우리나라의 의생활은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기존의 한복을 중심으로 양복이 도입되고 의복이 간소화되면서 다소 복잡한 양상을 보였으나 평상복과 노동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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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과 동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으로 만든 차. 화순군은 차나무가 별로 없던 지역인데, 2000년부터 이양면 증리 쌍봉사 아래에서 차나무를 재배하면서 유기농 녹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녹차는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차이다. 녹차를 처음 생산하여 사용한 곳은 중국과 인도였다. 그 후 일본, 실론, 자바, 수마트라 등 아시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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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일대에 있던 군현. 화순군 능주면과 도곡면 일대의 비옥한 평야 지역은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선사 문화를 형성하였고,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여래비리국 혹은 내비리국이 건국되었다. 백제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간 이후에는 이릉부리군(尒陵夫里郡)이 설치되었고, 신라의 통일 이후인 757년(경덕왕 16)에 능성군(陵城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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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의 능주 향교 앞에 있는 조선 시대부터 개항기까지의 역대 지방관 및 지역 유공자의 공적비.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인 능주 향교 입구에 역대 능성 현령·능주 목사·능주 군수·전라도 관찰사의 선정비·청덕비·휼민비 등의 공적비가 모여 있다. 또한 향교와 연관된 하마비나 향교 중수비도 있으며, 지역 구제를 한 인물들과 관련된 비도 있다. 향교 입구에 3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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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에 있는 능주 향교의 역사와 사적 등을 기록하여 1999년에 발간한 책. 『능주 향교지』는 1392년(태조 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하여 창건된 능주 향교의 연혁과 운영 사항 및 능주면 일대의 유림과 관련한 전반적인 사항을 정리한 책이다. 능주 향교지 편찬 위원회를 구성하고 1923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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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있던 옛 행정 구역. 능주목은 원래 능성현이었으나 1632년(인조 10)에 인헌 왕후 구씨의 성향(姓鄕)이라 하여 목으로 승격되고, 목사가 부임하는 곳이 되었다. 1895년 5월 1일 전국을 23부제(府制)로 개편하면서 부·목·군·현의 고을 등급 구분을 군으로 통일했는데 이때 나주부 능주군이 되면서 능주목의 명칭은 능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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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조선 현종 때 인물인 달성 배씨 배윤덕(裵允德)과 배광임(裵光袵)의 처 광산 김씨(光山金氏)의 효열을 기리기 위한 정려이다. 1660년(현종 1)에 정려를 받고 1671년에 정각이 세워졌다. 배윤덕의 아들은 이괄의 난 때 거병하여 충효를 떨쳤다. 화순군 도곡면과 능주면을 있는 지방도 822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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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마을 아내미길에는 진주 형씨 20대 종손인 형광호 씨 집이 자리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도장 마을을 지켜온 진주 형씨 가문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내력이 후손들의 이야기와 족보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조선 중종 때인 1519년경의 일이다. 진주 형씨 형세영(邢世英[1507~1581]이 기묘사화의 변을 피하여 나주 남평 우산리 골모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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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에 있는 녹색 농촌 체험 마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는 대밑에·독무지기·두대미·아내미·응달 등 5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응달 마을은 폐촌이 되었다. 도장 마을은 도장리를 구성하는 5개 자연 마을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으로 도장리와 같은 의미이다. 도장 마을은 시골 아낙들이 밭을 매며 부르던 노동요 80여 곡이 전승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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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거나 타지 출신으로 화순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 화순에서의 독립운동은 한말의 의병 투쟁과 자결 순국, 일제 강점기 3·1 운동과 광주 학생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화순에서 전개된 각종 독립운동은 물론, 지역적으로 인접한 광주에서의 각종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도 여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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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일대에 있던 지방 군현. 동복현은 백제 때에는 두부지현(豆夫只縣)이라 하였으며, 곡성군의 욕내군(欲乃郡)에 속하였다. 신라가 백제를 통합한 후 757년(경덕왕 16) 때에 이르러 동복현으로 고쳐 곡성군에 속하게 되었다. 신라는 전국을 9주로 나누어 지배하였으며, 옛 백제의 땅에 웅천주·완산주·무진주를 두었다. 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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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천 위의 야사제1교로 올라서면, 마을 왼편 이서천변에 우람한 은행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라의 국운과 화평을 울음소리로 알렸다는 신령스러운 고목이다. 노인당 어르신들은 서로 경쟁하듯 마을 자랑부터 풀어놓으신다. “야사를 제일로 거석(자랑)할 수 있는 것이 조짝에 있는 은행나무하고, 학교에 있는 느티나무가 있거든요.” (김덕남) “전설처럼 국가에 난이 있으면 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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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능주면 만수리는 만년동(萬年洞)·수동(水洞) 2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만년동 마을이 만수 1리, 수동 마을이 만수 2리이다. 만수리의 지명은 만년동 마을의 만(萬)자와 수동 마을의 수(水)자를 각각 취하여 만수리라 하였다. 만년동 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만년 동안 부유한 땅이라는 만년부복지(萬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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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에 있는 만연사에 대해 혜심, 유일, 조엽 등이 읊은 한시. 시의 배경인 만연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 만연산에 있는 절로, 1208년(고려 희종 4)에 창건되었다. 화순군에 있는 대표적인 사찰의 하나로 진각 국사 혜심(慧諶)[1178~1234], 연담 선사 유일(有一)[1720~1799], 조엽(曺熀) 등이 만연사에 대해 읊은 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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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이 배출한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문관과 무관 문무 관인이란, 문관이나 무관을 역임한 관인을 말한다. 고려나 조선 시대의 관직 운영은 크게 문관과 무관의 두개의 반열을 두었고, 이를 합쳐 양반이라 불렀다. 조회 시에 국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문반, 서쪽에는 무반이 정렬하였기 때문에 이를 동반 혹은 서반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이런 제도는 고려에서부터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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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백아면은 화순군 북동부에 위치한다. 동쪽은 곡성군 삼기면과 석곡면, 서쪽은 담양군 남면, 남쪽은 이서면과 동복면, 북쪽은 담양군 대덕면, 곡성군 오산면과 접하고 있다. 백아면의 극동 지점은 백아면 방리로 송단제 동쪽인데 예전에 흑석 마을이 있던 동쪽이기도 하다. 극서 지점은 서유리의 서유제 서쪽이다. 극남 지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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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차리에 있는 범산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범산과 옥룡자 이야기」는 도선 국사가 명당을 잡아 운주사를 지으려 할 때 허한 기를 보충하기 위해 범산을 옮겼으나 갓 장수 며느리가 이를 보자 산이 옮겨 가다가 멈췄다는 일종의 산 이동 설화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범산과 옥룡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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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프랑스가 조선의 문호 개방을 요구하며 침략함으로써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체에 영향을 미친 사건. 철종 재위 연간에 천주교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자 프랑스 신부들은 조선에 밀입국하여 선교 활동을 강화하였다. 1861년(철종 12) 신자 수는 1만 8000명, 1865년(고종 2)에는 2만 3000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1866년(고종 3)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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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청(淸)이 조선에 2차 침입하여 발생한 전쟁. 병자호란은 병자년에 일어나 정축년에 끝났기 때문에 병정노란(丙丁虜亂)이라 부르기도 한다. 1636년(인조 14) 청이 조선에 2차 침입하여 발생한 전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대항하였다. 화순에서도 조수성(曺守誠)[1570~1644]을 비롯한 의병들이 출전하였으나 화친이 이루어져 해산하였다. 1627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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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 있는 창녕 조씨 사당. 부일사는 조선 세종 때 병조 판서를 지낸 조흡(曺恰)을 주벽으로 조대중(曺大中), 조수성(曺守誠), 조성홍(曺誠弘), 조황(曺煌) 등을 배향하는 창녕 조씨 사우이다. 1785년(정조 9)에 고을 유림의 발의로 역정사(櫟亭祠)를 건립하였고 1868년(고종 5)의 서원 철폐 명령으로 훼철되었다. 후손들이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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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신앙 및 포교 활동을 하는 종교.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삼국 시대부터로 쌍봉사(雙峯寺)와 개천사(開天士)가 백제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유마사(維摩寺) 역시 627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백제 시기의 문헌 자료나 유물이 전하지 않아 그 시기에 불교가 전래되었음을 확인할 수는 없다. 불교 전래가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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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불탑. 화순 지역에는 예부터 그윽한 산세를 가지고 있어 골짜기마다 사찰이 들어섰다. 당 선종의 법을 이어 받아와 사자산문의 개산조가 된 철감 선사가 주석하면서 종풍(宗風)을 높였던 쌍봉사나 국내 유일의 천불천탑이 섰던 운주사의 가람이 그러한 곳이다. 온 나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고려의 진각 국사나 많은 저술을 남긴 조선의 연담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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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제작된 『비변사 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에 있는 화순 능주목의 지도. 『비변사 인 방안 지도』는 경위선 표식(經緯線表式) 군현 지도집이다. 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은 비교적 일정한 크기의 방안(方眼)을 바탕에 그림으로써 축척을 적용하여 그린 군현 지도 모음집이다. 방안으로 축척을 나타냈으므로 방안 지도 또는 경위선 표식 지도·선표도(線表圖)·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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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제작된 『비변사 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에 있는 화순 동복 지역의 지도. 『비변사 인 방안 지도』는 경위선 표식(經緯線表式) 군현 지도집이다. 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은 비교적 일정한 크기의 방안(方眼)을 바탕에 그림으로써 축척을 적용하여 그린 군현 지도 모음집이다. 방안으로 축척을 나타냈으므로 방안 지도 또는 경위선 표식 지도·선표도(線表圖)·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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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제작된 『비변사 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에 있는 화순 지역의 지도. 『비변사 인 방안 지도』는 경위선 표식(經緯線表式) 군현 지도집이다. 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은 비교적 일정한 크기의 방안(方眼)을 바탕에 그림으로써 축척을 적용하여 그린 군현 지도 모음집이다. 방안으로 축척을 나타냈으므로 방안 지도 또는 경위선 표식 지도·선표도(線表圖)·방안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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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에 있는 문세정의 강학소. 삼계정사는 문세정(文世禎)이 후진을 양성했던 강학소이다. 자는 국로(國老), 호는 삼계(三溪)이고,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당시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당하거나 사사(賜死) 당하던 때 도내의 유림을 대표하여 상소문을 올렸다가 화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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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일심리에 있는 사우. 1978년 고려 충신 임선미(林先味)[?~?]를 향사하기 위해 사우를 건립하여 송월사(松月祠)라고 하였다. 임선미의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양대(養大), 호는 휴암(休庵)이다. 성석린(成石璘)·박상충(朴尙衷)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닦았고 고례(古禮)를 참작, 삼년상(三年喪)을 권장하는 등 퇴폐한 세속을 바로잡았다.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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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마을을 들어서서 규남 박물관 길 건너에는 넝쿨 숲을 배경으로 조그마한 정려각 하나가 외롭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이것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야사 마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진양 하씨 집안의 하성래 씨에 의하면, 쌍렬문은 정려각 두 개를 한자리에 모아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하대붕의 처인 동복 오씨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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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함(汝涵), 호는 송석정(松石亭).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 양산립(梁山立)의 아들이다. 양인용(梁仁容)[1555-1615]은 학식이 풍부하고 지조가 뚜렷하였다.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을 지내다가 광해군 때 고향인 화순에 내려와 송석정(松石亭)을 축조하고 그곳에서 시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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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화순군 능주 지역의 지도. 『여지도』는 ‘비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으로 전국 모든 군현을 비교적 작은 크기로 그린 18세기에 제작된 지도책이다. 이용에 매우 편리한 장점을 지녔으며, 군현 지도의 보급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화순 지역의 옛 모습은 조선 8도의 대축척 군현 지도가 수록된 『여지도』 2첩 중 전라도 부분의 「능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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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문자 기록이 있는 역사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선사 시대의 경우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중기인 약 5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삼한 소국들이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데,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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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민주현이 완산부의 명승과 지세 등을 읊은 가사. 민주현(閔胄顯)[1808~188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관직 생활 초기인 1854년(철종 5)에 종실의 시조를 모신 완주부[전라북도 전주의 옛 이름] 조경묘(肇慶廟) 별검(別檢)이 되었으며, 이듬해 봄에 지인들과 한벽당(寒碧堂)·만경대(萬景臺)·옥류동(玉流洞) 등 전주의 명승을 유람하였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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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유교는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을 바탕으로 삼는 학문이다. 더 나아가 종교적 관점에서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공자의 가르침, 곧 유교는 인(仁)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는다. 인간의 도리를 의미하는 인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삼강오륜의 사회 윤리가 바로 그것이라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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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 일대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신라의 지방 통치 체제는 주군현(州郡縣) 제도를 근간으로 하였으나, 일반 군현과는 다른 소(所)와 부곡(部曲)이라는 특수한 행정 구역이 있었다. 소와 부곡은 신분적인 면에서 집단 천민의 거주지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곡(部曲)의 기원은 중국에서는 노예 혹은 노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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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 5월 왜구가 전라도 남해안에 침입하여 전라남도 화순 지역 출신의 달량 권관(達梁權管) 조현(曺顯)[?~1555]이 전사한 사건. 조현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희경(希慶), 호는 월헌(月軒)이다. 을묘왜변 때에 왜구 토벌에 나섰다가 전사한 무신(武臣)이며, 사후(死後) 조정에서 몇 차례에 걸쳐 포상을 실시하였다. 16세기 초 조선은 삼포왜란(三浦倭亂)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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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조선 시대와 개항기에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들이 스스로 조직한 자위군. 조선 시대 화순 지역 최초의 의병 운동은 1592년(선조 25)에 일본군의 침입으로 시작된 임진왜란 때에 일어났다. 임진왜란은 7년간이나 계속되어 참혹한 피해를 조선에 입혔다. 조선의 관군은 임진왜란 초기에 연전연패를 거듭하였고, 전라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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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의식을 행할 때 부르는 민요. 화순 지역 주민들이 의식을 거행하면서 신에게 인간의 생존과 관련하여 화를 쫓고 복을 비는 노래들이다. 특수 집단의 무가와 불가로서의 의식요가 있고, 비전문적인 서민들의 민요로서 부르는 의식요로 나눌 수 있다. 화순 지역은 조선 인조 시대에 능주가 관아의 고을이 된 이후 많은 예인과 무속인이 거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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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화순군의 북쪽에 위치한다. 이서면 동쪽은 북면·동복면, 서쪽은 광주광역시와 화순읍, 남쪽은 동면(東面), 북쪽은 전라남도 담양군과 접하고 있다. 1914년 동복군이 화순군에 편입되면서 내서면과 외서면을 합해서 이서면(二西面)이라 칭한 데서 이서면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이서면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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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화순읍 일심리는 용곡·일심동·순곡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화순읍의 주거 중심지이다. 일심리는 일심동 마을의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일심동 마을의 뜻은 고려를 섬기는 충신들이 조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한마음의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용곡 마을은 산등에 형성된 마을이어서 ‘미르골’이라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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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에 도착한 왜군은 경상도 지역 주요 고을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화순군을 비롯한 전라도 일대는 왜군의 직접적인 침입을 받지는 않았으나 전직 관료, 양반 유생, 일반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켜 항쟁에 나섰다. 최경회(崔慶會)[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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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출신 조선 후기 실학자 하백원이 발명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 양수기. 화순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실학자 규남 하백원이 30세 되던 1810년에 발명한 자동 기계 장치다. 물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양수기에 해당한다. 하백원의 『자승차 도해』에 설계도 등이 남아 있던 것을 바탕으로 국립 중앙 과학관 과학 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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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임진왜란 중 화의 교섭 결렬로 왜군이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을 다시 침입한 전쟁. 임진왜란 중 조선의 강력한 저항과 명(明)의 원군으로 인해 전쟁이 장기화되자 왜군은 화의가 진행되고 있는 틈을 타서 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의가 결렬되자 다시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면서 정유재란이 발생하였다. 전라도 지역은 이전과 달리 왜군의 직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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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雙峰寺)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 소재하며,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교구인 순천 송광사의 말사이다. 당에서 귀국한 철감 선사 도윤의 주석(駐錫)으로 9산 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초를 닦았다. 쌍봉사는 고려 시대 최씨 무인 정권의 비호를 받는 무진주[광주] 일대의 선종 대가람이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왕실의 지원을 받는 등 창건 이래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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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조직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화순 지부 조직.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화순 지부는 여운형(呂運亨)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전라남도 지역 지부 조직이다. 결성 당시 채택한 강령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완전한 독립 국가의 수립’, ‘민주주의 원칙 준수’, ‘치안과 질서 유지’ 등이 설립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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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1392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창하였다. 각종 제도는 태조 이성계가 즉위 교서에서 “의장 법제는 모두 전조(前朝)의 고사에 따른다.”로 밝힌대로 고려 시대의 것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이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 이루어진 것은 1405년(태종 5) 무렵이었다. 우선 고려 때의 최고 정무 기관이었던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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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대표적 문인화가로는 조선 후기의 윤두서(尹斗緖)[1668~1715]와 조선 말기의 허련(許鍊)[1808~1893]을 꼽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앞선 시기인 조선 전기의 화가로는 중종 때 문장과 서화로 명성을 얻은 양팽손(梁彭孫)[1488~1545]이 있다. 양팽손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으로 송흠(宋欽)[1459~1547]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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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 있는 창령 조씨 문중 서원. 지곡 서원은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 위치한다. 화순군청에서 약 5㎞ 거리이다. 지곡 서원은 조선 태종 대 좌명공신이자 세종 대 우군 도총제를 지낸 조흡(曺恰)[?~1429]을 주향으로 하고 정여립의 일파로 몰려 장살당한 조대중(曺大中)[1549~1590], 홍문관 정자를 지낸 조수홍(曺守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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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 동면 지도를 들여다 보면, 여느 전라남도 지역과는 다르다. 촘촘한 등고선이 이어지고, 화순천이 그 사이에 겨우 물길을 낸다. 말 그대로 산간 오지이다. 그런데 충의로와 화순선 철도를 따라 제법 큰 마을들이 이어진다. 탄광 마을들이다. 탄광 마을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척박한 토양과 경작지가 좁은 오지인데도,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단다. 다양한 성씨의 외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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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는 자연 마을인 창랑(滄浪)·물염(勿染)·신기(新基)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창랑 마을과 물염 마을은 1984년 댐 공사로 수몰되었다. 이에 수몰지 밖에 새로 마을을 형성하여 신기 마을과 함께 창랑리를 구성하였다. 창랑리의 지명은 창랑 마을이라는 지명을 취하여 지어졌다. 창랑 마을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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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적벽은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보산리·창랑리 일대 창량천 주위에 약 7㎞에 걸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경승지이다. 화순 적벽은 무등산 국립 공원이 품고 있는 제일의 비경으로 예로부터 호남 제1의 명승지로 알려져 왔다. 무등산은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와 화순군·담양군에 걸쳐 있는 남도의 진산(鎭山)이다. 2013년에 국립 공원으로 승격되었고, 총 면적 75.4㎢ 중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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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최경회 사당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최경회(崔慶會)[1532~1593]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에서 태어나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67년에는 과거에 합격하였다. 그는 1593년(선조 26) 2차 진주성 전투에서 고종후·김천일(金千鎰) 장군 등과 합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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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 실학자 하백원(河百源)[1781~1845]이 그린 세계 지도와 우리나라 지도. 규남(圭南) 하백원(河百源)[1781~1844]은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1712~1781]·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1727-1798]·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1790]과 함께 호남 실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많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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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조선 전기 양팽손이 사용한 서재. 학포당은 조선 중종 대 학자인 양팽손이 처음 지은 후 퇴락하여 없어지자 항일기에 후손이 다시 중건한 것이다. 학포당을 둘러싼 담장은 호박돌 담장으로 그 위에 기와를 얹은 모습이다. 대문은 솟을대문으로 사대부의 권위를 나타내는 형식이다. 학포당에는 현판이 없다. 그러나 학포 양팽손의 시 한 편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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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吳之湖)[1905~1982]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출신의 서양화가이다. 본관은 동복 오씨로 호는 모후산인(母后山人)이고 본명은 점수(占壽)이다. 1905년 12월 24일 한말에 보성 군수를 지낸 오재영(吳在永)과 김선군(金宣君)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지호는 1912년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1913년 동복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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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규남 박물관(圭南博物館)에 소장된 기행시화첩(紀行詩畵帖). 하백원(河百源)[1781~1844]은 1842년 4월 15일 보령(寶寧)의 다섯 선비 평천(平泉) 이병중(李秉中)[1762~1848], 광헌(光軒) 이우명(李遇明), 취죽(醉竹) 조순영(趙淳榮), 거회(居晦) 이우정(李遇正), 국은(菊隱) 심사숙(沈思叔)과 함께 보령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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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있는 목비에 얽힌 이야기. 「홍기천 기우제 이야기」는 화순 현감 홍기천이 기우제를 올려 비를 내리게 하고, 자신의 선정비를 목비로 만들게 해서 훗날 향교를 중수할 때 부족한 목재로 사용하게 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홍기천 기우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 1991년에 전라남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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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있는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낙엽 교목으로서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이다. 주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은행나무는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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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보산리·장학리 일대에 있는 명승지. 화순 적벽은 신령천이 흘러 적벽 강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중국 양자강 상류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하여 적벽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1979년 8월 3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종 때의 유명한 선비인 신재 최산두가 이곳을 보고 소동파의 ‘적벽부’에서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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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화순 탄광 지배인이 광부들의 임금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던 사건. 광복 직후 석탄은 조선의 중추적인 에너지 자원이었기 때문에 석탄에 대한 미군정의 관심은 높았다. 화순 지역에는 일제 강점기에 개발된 종방 탄광과 남선 탄광이 있었는데 미군정은 탄광의 운영을 맡으면서 이를 하나로 통합해 화순 탄광이라고 불렀다. 1947년 화순 탄광에서는 광부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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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정려각. 화순 능주 삼충각(三忠閣)은 능주 지역에서 출생한 최경회(崔慶會)·문홍헌(文弘獻)·조현(曺顯) 등 충신 3인의 충공을 기념하기 위해 1685년(숙종 11)에 능주 향교 유림들이 세운 정려각(旌閭閣)이다. 정려란 본래 충신, 효자, 열녀들이 살던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을 말하는데 오늘날은 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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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吳元)[1193~1265]을 시조로 하는 전라남도 화순군의 세거 성씨. 보성군(寶城君) 오현필(吳賢弼)의 셋째 아들 오원(吳元)을 시조로 하는데, 고려 때 오원이 화순으로 입향하고 그 후손들이 화순에서 대를 이어 살면서 본관을 화순으로 하였다. 화순오씨의 선조는 500년(신라 지증왕 1)에 중국 제(齊)나라에서 귀화한 오첨(吳瞻)이다. 오첨이 함양 땅에서 신라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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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의 효자와 열부 등을 종합적으로 수록한 책. 『화순의 효열문』은 전라남도 화순군의 효자와 효부, 열부, 충복(忠僕) 등을 소개한 책이다. 해주 최씨, 제주 양씨 등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세거(世居)한 집안과 세거지 별로 효자와 열부를 수록하였다. 저자 강동원은 천하의 근본인 효(孝)를 통해 조선(朝鮮)의 뿌리가 되는 충효 사상을 밝히고자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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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동면·이서면 일대를 관할하던 옛 행정 구역. 화순현은 940년(고려 태조 23)에 여미현을 화순현으로 개칭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고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1407년(태종 7)~1416년(태종 16)에는 복순현과 합속되었고, 1416년(태종 16)~1418년(태종 18)에는 순성현과 합속되었으며, 1594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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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서성리에 있는 환산정을 짓고 유함이 읊은 한시. 한시 「환산정을 짓고서」의 작가 유함(柳涵)의 자는 자정(子淨), 호는 백천(百泉), 본관은 문화이며,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다. 그는 조선 선조~광해군 때의 인물로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지봉(芝峯) 이수광(李睡光), 구봉(九峯) 조엽(曺熀)[1600~1665] 등과 교유하였다. 병자호란 때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