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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낙네들의 봄날 잔치, 도장 마을 화전놀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농사일 하랴, 살림하랴, 도장 마을 여성들은 늘 시간이 부족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친한 부인들끼리 모여 노는 즐거움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여성들이 바쁜 농사일에서 잠깐 해방이 되는 날이다. 시부모님 눈치 덜 보는 집에 옹기종기 모여서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친한 부인들끼리 집에 모여서 놀았어. 비가 오면 놀고. 계란 삶아 먹고. 장구치고 놀고....

  • 아산 초교아산 초등학교(雅山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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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 습관을 길러 바른 품성을 지닌 착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며 지혜를 키우는 똑똑한 어린이, 소질과 취미를 찾아 특기를 계발하는 유능한 어린이, 몸이 건강하고 의지가 굳센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과 슬기를 지닌 참되고 창의적인 아산인 육성’이다. 1922년 7월 19일 아산 공립 보통학교로...

  • 아산 초등학교(雅山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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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 습관을 길러 바른 품성을 지닌 착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며 지혜를 키우는 똑똑한 어린이, 소질과 취미를 찾아 특기를 계발하는 유능한 어린이, 몸이 건강하고 의지가 굳센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과 슬기를 지닌 참되고 창의적인 아산인 육성’이다. 1922년 7월 19일 아산 공립 보통학교로...

  • 아산(鵝山)정호민(丁好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사명(士明), 호는 아산(鵝山). 판결사 정인례(丁仁禮)의 8세손이며, 정인남(丁仁男)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성주 형씨(星州邢氏) 형관(刑寬)의 딸이다. 정호민(丁好敏)[1598~1678]은 어려서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통독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다는 소...

  • 아산초아산 초등학교(雅山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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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 습관을 길러 바른 품성을 지닌 착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며 지혜를 키우는 똑똑한 어린이, 소질과 취미를 찾아 특기를 계발하는 유능한 어린이, 몸이 건강하고 의지가 굳센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과 슬기를 지닌 참되고 창의적인 아산인 육성’이다. 1922년 7월 19일 아산 공립 보통학교로...

  • 아술당황진(黃進)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동복 현감을 지낸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자는 명보(明甫),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1591년 동복현감을 지냈고, 익산 군수,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순절하였다. 황희(黃喜)의 5세손이고, 지중추부사 황사효(黃事孝)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부사직 황개(黃塏)이고, 아버지는 증좌의정 황윤공(黃允恭), 어머니는 방씨(房氏)이다. 황진(黃進)[1...

  • 아스파라거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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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과 도암면 일대에서 재배되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화순군에서는 2008년에 ‘읍면 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화순군 춘양면 8개 농가에서 아스파라거스 재배가 시작되었다. 아스파라거스는 2011년에 일본으로 처음 수출되었다. 2012년에는 도암면에서도 아스파라거스가 재배되고 있다. 아스파라거스는 봄채소이며, 여러해살이 속씨식물이다. 온대 서부 아시아에서 유럽으...

  • 아이 팔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아이를 단골이나 무당에게 거짓으로 파는 행위. 지금과 같이 현대화된 병원이 없던 과거 시절에는 홍역과 같은 전염병이 마을에 돌면 어린 아이들이 죽는 일이 많았다. 그러한 까닭에 예전에는 태어난 아이의 사주에 명이 짧다고 하면 여러 가지 ‘뱅이[액막이]’를 했다. 이러한 뱅이의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단골이나 점쟁이, 혹은 절이나 바위에 아이를 팔거나 아이를 위...

  • 아카데미와 카페테리아를 꿈꾸는 도장 마을 회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도장 마을 회관의 겉모습은 아메리카노 커피 혹은 이탈리안 파스타를 팔 것 같은 레스토랑이다. 하지만 회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구석 구석 채워진 옛 물건들과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고 박물관인지 도서관인지 혼동하게 되는 것이다. 도장 마을 회관은 향토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이 도회적인 건축물과 만나 하모니를 빚어낸 하나의 작품이 아닐까 한다. 도장 마을 회관은...

  • 아파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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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공동 주택 양식.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1977년 「주택 건설 촉진법」이 제정된 이후 본격적으로 건립되기 시작했다. 화순군의 건축 형태는 1980년대까지 단독 주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비교적 인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파트는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건축되었다. 화순군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공동 주택으로는 1988년에 건축된 ‘능주 농공...

  • 안기선(安基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가야금 산조 명인 안기옥의 동생이며 서편제 판소리의 맥을 잇는 여류 명창인 안채봉의 사촌 오빠이고, 딸은 창극인 안행련이다. 안기선(安基善)[1904~?]은 판소리 다섯 마당을 두루 잘했다. 지방에서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성우향, 박초선, 신영희, 박송희에게 소리를 가르쳤다. 부인과 딸들은 안향련을 제외하고 모두 국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안성리(安城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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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복면 안성리는 안림(安林)·석당·성황(城隍)·월봉(月峰) 등 4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월봉 마을은 1950년 6·25 전쟁 전후로 폐촌이 되고 신성(新城)이 새로 형성되었다. 안성리의 지명은 안림 마을의 지명에서 안(安)자를 취하고 성황 마을의 성(城)자를 각각 취하여 만들었다. 안림 마을은 안샘-안시암-안새미-안숨이...

  • 안수(安水)조병식(曺秉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안수(安水). 구봉(九峰) 조엽(曺熀)의 후손이며, 진사 조익은(曺翊殷)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조유승(曺有承)이다. 조병식(曺秉植)[?~?]은 1878년(고종 15)에 무과에 급제하여 우후(虞侯)와 금구 군수(金溝郡守)를 역임하였다. 고을이 크게 다스려져서 거사비(去思碑)가 있다. 1905년에 통정대부에 올랐다....

  • 안심 저수지(安心貯水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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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에 있는 저수지. 안심 저수지는 안심제라고도 하며, 농업 수리 시설물로 1종 저수지이다. 농업용수 개발을 위해 1982년 착공하여, 1987년 준공되었다. 총 저수량 122만 7000㎥, 유효 저수량 117만 3000㎥로 1종 저수지이다. 유역 면적 430㏊, 인가 면적 190㏊, 관개 면적 153.7㏊, 홍수 면적 12.1㏊이며, 제방 높이는 30....

  • 안심리(安心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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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는 자연 마을인 안심(安心)·사마동(司馬洞)·하반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심리의 지명은 안심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지어졌다. 본래 안심사(安心寺) 입구에 있어 동개라 불렀는데 후에 사찰의 이름을 취하여 마을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사마동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뒤쪽이 몰매[馬山]인데, 이에 따르면 마을 위치가 말의...

  • 안심제안심 저수지(安心貯水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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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에 있는 저수지. 안심 저수지는 안심제라고도 하며, 농업 수리 시설물로 1종 저수지이다. 농업용수 개발을 위해 1982년 착공하여, 1987년 준공되었다. 총 저수량 122만 7000㎥, 유효 저수량 117만 3000㎥로 1종 저수지이다. 유역 면적 430㏊, 인가 면적 190㏊, 관개 면적 153.7㏊, 홍수 면적 12.1㏊이며, 제방 높이는 30....

  • 안양산(安養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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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와 이서면 안심리에 걸쳐 있는 산. 안양산(安養山)[853m]은 동쪽으로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와 서쪽으로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에 걸쳐 있다. 무등산 서쪽 장불재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낙타봉의 백마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끝머리에 편평하고 두툼한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 안양산이다. 화순읍의 북동쪽이며 무등산의 남쪽에 위치한다. 안양산의 능선으로 화순읍...

  • 안양산 철쭉제(安養山-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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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 들국화 마을에서 매년 5월 초에 열리는 축제. 2005년부터 매년 5월 초에 열리는 축제로서 아름다운 철쭉이 피어나는 계절에 맞추어 산행객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이다. 무등산 등반 대회 및 체험 행사로 구성되어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 들국화 마을에는 안양산을 등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등산로가 있어 매년 수 만 명의 인파가 광활...

  • 안양산 휴양림(無等山扁柏自然休養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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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 안양산에 있는 휴양림. 무등산 편백 자연 휴양림은 무등산 동쪽 안양산[853m] 기슭 해발 300~400m에 자리하고 있는 20여만 평 규모의 개인이 운영하는 자연 휴양림이다. 휴양림의 주요 수종인 편백나무와 40~50년생의 삼나무는 인체에 유익한 피톤치드 성분을 소나무보다 2~3배나 많은 양을 배출하여 삼림욕으로 심신의 피로를 해소하며 휴식을 취하...

  • 안여(顔汝)송수면(宋修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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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화순에서 활동한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안여(顔汝), 호는 사호(沙湖). 만년에는 노호(老湖)라 하기도 하였으며 동복(同福)에 은거하여 살았다. 호남 지방에서 일생동안 서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소치 허련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 산수화와 묵죽도, 매화도 등 많은 작품을 남긴 예술가이다. 송수면(宋修勉)[1847~1916]은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서 아버지 송인만과 창...

  • 안익지(安益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에 은거한 문인.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겸숙(謙叔), 호는 야옹(野翁). 안축(安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중돈(安重敦)이고, 아버지는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이다. 어머니는 경주 정씨(慶州鄭氏) 정승복(鄭承復)의 딸이고 부인은 김의명(金義鳴)의 딸이다. 안익지(安益之)[1608~1687]는 효우(孝友)가 뛰어나고 재주가 명민하였다. 아버지의 밑에서 수학...

  • 안택(安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정월에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가정신(家庭神)에게 비는 의례. 안택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일련의 종교적 의례를 일컫는다. 이는 흔히 굿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안택굿이라고도 한다. 일 년 간 집안의 가장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의 평안과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하는데, 대체로 전문 사제인 법사나 무당이 맡아 행하는 종교 의례이다. 이때 법사나 무당은 경문...

  • 안택 고사안택(安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정월에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가정신(家庭神)에게 비는 의례. 안택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일련의 종교적 의례를 일컫는다. 이는 흔히 굿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안택굿이라고도 한다. 일 년 간 집안의 가장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의 평안과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하는데, 대체로 전문 사제인 법사나 무당이 맡아 행하는 종교 의례이다. 이때 법사나 무당은 경문...

  • 안택굿안택(安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정월에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가정신(家庭神)에게 비는 의례. 안택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일련의 종교적 의례를 일컫는다. 이는 흔히 굿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안택굿이라고도 한다. 일 년 간 집안의 가장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의 평안과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하는데, 대체로 전문 사제인 법사나 무당이 맡아 행하는 종교 의례이다. 이때 법사나 무당은 경문...

  • 안택환(安澤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여은(汝恩), 호는 삼희당(三希堂).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안순(安栒)이고, 어머니는 수원 백씨(水原白氏) 백진훈(白鎭勳)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현수(朴賢秀)의 딸이다. 안택환(安澤煥)[1844~1917] 은 자질이 순박하고 성품이 인후하였다. 어려서 백부(伯父) 안숙(安橚)에게...

  • 알맷등미륵골 유래(彌勒-由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도로변에 있는 미륵불과 미륵골이라는 들판에 얽힌 이야기.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미륵골이라는 곳에 조담 선사라는 분이 미륵불을 모셨는데, 이 미륵불이 내려다보는 마을에 역병이 돌고 부녀자들이 음탕해진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이 미륵불을 무너뜨렸는데, 그 후로 절에 빈대가 끓고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상하게 해서 결국 절이 폐사됐다는 사찰...

  • 앙지(仰止)구이첨(具爾瞻)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화순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앙지(仰止), 호는 경재(敬齋). 구환(具桓)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진사(進士) 구문(具紋)이다. 구이첨(具爾瞻)[?~?]은 가학을 계승하여 학문의 바탕이 넉넉하고 풍부하였다. 고향에 은거하며 다수의 후학을 길러냈다. 1519년(중종 14)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장흥 교수(長興敎授)에 이르렀다....

  • 애개 나무보암리 효자 이야기(寶岩里孝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일대에서 전해지는 효자에 관한 이야기. 「보암리 효자 이야기」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보암리에서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였던 정자근노미의 효행담이다. 1981년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발행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에 「효자 정자근과 적벽」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보암리 효자」라는 제목으로 실렸고, 1997년에...

  • 애재, 여점, 왜치예재(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구례리와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신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예재는 화순군의 남동부 끝자락인 이양면 구례리와 보성군 노동면 신천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호남 정맥의 계당산과 봉화산을 연결하는 안부(鞍部)[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다. 예부터 주요 고갯길이었으며 화순군과 보성군을 남북으로 연결한다. 현재는 경전선 철도와 국도 29호선이 통...

  • 앵남교(鸚南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교량. 국가 지원 지방도 55호선을 연결하기 위해 1992년도에 준공하였다. 앵남리의 지명은 앵무촌(鸚鵡村) 마을의 앵(鸚)자와 화남리(花南里) 마을의 남(南)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앵남교는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앵남교는 총 길이가 31m이고 폭은 9m이며 높이는 12m이다. 경간 수는 1개이며...

  • 앵남리(鸚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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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는 앵무동·화남·신기촌·쌍계동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앵남리의 지명은 앵무동 마을의 앵(鸚)자와 화남리(花南里)의 남(南)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다. 앵무동 마을은 앵무봉충의 명당이 있는 앵무산 아래에 있어 앵무동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화남 마을은 뒷산이 꽃봉오리 형국이라 꽃봉이라 부르는데, 꽃메 남쪽에...

  • 앵남리 밀암골 고인돌 떼(鸚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밀암골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앵무촌에서 경전선 철도 굴다리를 지나 철로와 도로를 따라 밀암골이라 부르는 곳으로 올라가면 도로 왼편 기슭에 ‘전주 이씨 순양군세천(全州 李氏 順陽君世阡)’ 비가 있고, 도로 오른쪽에 고인돌 2기가 있다.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전주 이씨 제각인 양이재가 있다. 앵남리 밀암골 고인돌...

  • 앵남리 밀암골 지석묘앵남리 밀암골 고인돌 떼(鸚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밀암골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앵무촌에서 경전선 철도 굴다리를 지나 철로와 도로를 따라 밀암골이라 부르는 곳으로 올라가면 도로 왼편 기슭에 ‘전주 이씨 순양군세천(全州 李氏 順陽君世阡)’ 비가 있고, 도로 오른쪽에 고인돌 2기가 있다.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전주 이씨 제각인 양이재가 있다. 앵남리 밀암골 고인돌...

  • 앵남리 앵무 선돌(鸚南里鸚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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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앵무동 마을에 있는 선돌. 마을에서는 예부터 마을 입구에 세워진 나쁜 액을 막아주는 선돌을 ‘선독’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98년에 간행된 『화순군의 민속과 축제』에 의하면, 마을에서는 옛날에 마을의 기강을 해치는 풍기 문란한 자가 있으면 이 선돌에 묶어서 체벌하였다는 내용을 조사, 기록하였다. 앵남리 앵무 선돌은 앵무동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를 중...

  • 앵남역(鸚南驛)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경전선의 옛 철도역. 코레일 광주 지사에 소속된 역으로서 역명은 역이 위치한 앵남리 지명을 따라 지었다. 일제 강점기에 최초 개설된 후 폐설되었다가 해방 후에 다시 운영되었으나 2008년에 최종 폐역됐다. 일제 강점기 쌀과 면화를 반출시키기 위해 전라남북도 및 경상남도의 곡창 지대와 부산을 연결하기 위한 목적과 여수항을 통한 일본과의 원활한...

  • 야구(野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이루어지는 야구 관련 활동이나 현황. 화순군에서 야구 활동은 엘리트 선수를 발굴하는 학교 야구부와 지역 사회인 야구 연합회 활동으로 나누어진다. 화순 초등학교, 화순 중학교, 화순 고등학교 야구부는 지역의 체육 인재를 육성할 뿐만 아니라 화순군이 야구의 명문이라는 이미지를 제고하고 있으며, 화순군 야구 연합회는 1,300여 명의 동호인이 참여하여 건강 증진과...

  • 야사 마을 갱변에 열린 시골 장터, 이서 오일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야사 마을로 들어서기 전 야사제1교 왼편으로 공터가 보인다. 버스 정류장 좌측이 강변이다. 1984년부터 재래시장인 이서장이 서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도석리 이서장터를 중심으로 번화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서장을 이용하던 인근 마을들이 3차에 걸친 동복댐 공사로 수몰되면서 도석리에 있던 이서장[방석굴장]도 수몰되었다. “도석리에 있던 이서장은 겁나게 장이 컸는데, 담양...

  • 야사 마을 그림 지도를 그린 하백원 선생의 후손 하장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요것이 돌아요, 이 동자가. 돌면서 땅땅 쳐서 시간을 알려줘요. 몸체는 전부 놋쇠로 되어 있어. 이것이 테입이 있어. 테입을 감아주면 이 동자가 돌면서 종을 때려서 시간을 알려줘.” 가로 20㎝, 세로 25㎝ 정도의 크기였다는 「자명종 그림」을 보면서 야사 마을 출신 하장호 씨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자명종 그림」은 하장호 씨가 그렸는데, 본래 자명종은 야사 마을 출신으...

  • 야사 마을 둘러보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야사 마을은 깊은 산과 맑은 물 그리고 들녘이 어우러진 절경의 산골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1,000m가 넘는 무등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방아재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마을 뒤까지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마을 앞 이서천 너머가 별산 등성이고, 동쪽으로는 멀리 적벽산이 보인다. 이런 첩첩 산중이지만 맑은 하천이 넓은 들을 이룬다. 야사 마을은 이서천을 사이에 두고 가옥이 모여 있는 아리데...

  • 야사 마을에서 명망을 떨친 진양 하씨 사람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2013년 현재 야사 마을에는 52가구가 살고 있다. 하씨, 나씨, 이씨, 김씨, 조씨, 정씨, 송씨, 최씨 등 8개 성씨가 모여 살고 있으며 혼인으로 인한 이주 성씨인 유씨, 한씨, 박씨, 임씨, 천씨, 성씨 등 14개 성씨가 합해져 100여명이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진양 하씨는 마을 인구 전체의 약 45%이상 차지하고 있다. 1934년 조선 총독부에 임시국제조사과...

  • 야사 마을의 나경적, 호남 실학의 선구자가 되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야사 마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호남 실학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바로 석당 나경적(羅景績)[1690~1762]과 규남 하백원(河百源)[1781~1844]이다. 이 둘은 조선 후기 농업과 상공업의 한계성과 모순 등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실학에 대한 뜻을 호남에서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이끌었던 인물들이다. 나경적은 1690년에 야사 마을에서 태...

  • 야사 마을의 두 열녀, 동복 오씨와 진양 하씨의 쌍렬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야사 마을을 들어서서 규남 박물관 길 건너에는 넝쿨 숲을 배경으로 조그마한 정려각 하나가 외롭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이것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야사 마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진양 하씨 집안의 하성래 씨에 의하면, 쌍렬문은 정려각 두 개를 한자리에 모아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하대붕의 처인 동복 오씨 부인의 정려는 학당 마을...

  • 야사 마을의 옛길을 추억하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야사 마을의 길은 사람과 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며, 마을의 위상을 변화시켜 왔다. 현재 야사 마을은 교통이 불편한 산골 오지이다. 그러나 과거 차가 없던 도보시절, 전라남도 남쪽 지역과 북쪽의 도시들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순천·보성 지역에서 광주나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지름길인 야사 마을을 거쳐가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규남 할아버지는 신경준, 홍대용 그런 분들에 관한 정...

  • 야사리(野沙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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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는 자연 마을인 야사·산사(山沙)·태평동·용호(龍湖)·갑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사리의 지명은 야사 마을의 지명을 취하여 이름이 붙었다. 야사(野沙) 마을의 뜻은 ‘들모실’[들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한자화한 것이다. 야사 마을은 처음에는 평사(平沙)라 했고 이후 금사(錦沙)·사촌(沙村)·사천(沙川)이라 표기하다가...

  • 야사리 산사 당산제(野沙里山沙堂山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사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사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자시[밤 11시~오전 1시]경에 할머니 당산에서 마을 공동으로 제를 지낸다. 제관은 마을 회의를 거쳐 뽑으며, 제비는 마을 전답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제의 절차는 진설 → 분향 →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소지 → 음...

  • 야사리 산사 조탑·선돌(野沙里山沙造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산사 마을에 있는 조탑과 선돌. 야사리 산사 마을 입구에 조탑[돌탑]이 세워져 있고, 조탑에서 북쪽으로 1m 지점에 음각의 명문이 새겨진 입석[선돌]이 있는데, 모두 마을 지킴이로서의 성격이 강한 귀중한 지역 문화 유산이다. 산사 마을 한가운데에는 할머니당산 숲이 있고, 마을 입구 논두렁에 할아버지당산과 조탑이 조성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조탑을...

  • 야사리 야사 당산제(野沙里野沙堂山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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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11시경에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 은행나무 당산에서 제를 지낸다. 제관은 섣달그믐 경에 마을 회의에서 뽑으며, 제비는 마을 전탑에서 나오는 수입금으로 충당한다. 제의 절차는 세 곳의 당산에 각각 제물을...

  • 야사리 용호 당산제(野沙里龍湖堂山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음력 정월 14일 밤 10시경에 당산과 당산 할머니 앞에서 제를 지낸다. 제관은 마을 총회에서 뽑으며, 제비는 호구전으로 마련한다. 제의 절차는 유교식 제차에 따라 엄숙하게 진행된다. 당산제를 언제부터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 야사리 용호 조탑(野沙里龍互造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 마을에 있는 조탑. 야사리 용호 조탑[돌탑]은 마을 어귀에 원형의 탑을 쌓고 그 위에 입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마을 지킴이로서의 성격이 강한 귀중한 지역 문화유산이다. 이서 면사무소에서 이서천 건너편에 있는 용호 마을은 ‘도룡굴’이라고도 부르며, 산사 마을과 마주보고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용이 물을 먹으러 내려오는 형국이라고 하며, 무등산에서 흘...

  • 야사리 진주 하씨 집성촌(野沙里晉州河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진주 하씨 집성촌. 야사 마을은 처음에 평사라 했고 이후 금사, 사촌, 사천이라 하다가 야사라 했다고 한다. ‘야사’는 들모실의 뜻이다. 1600년경 진주 하씨 사간공파 하윤구(河潤九)[1570~1646]가 영신에서 입향하여 금사정(錦沙亭)을 짓고 거주하면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입향조가 되었다. 하윤구는 호가...

  • 야사리가 품은 가야금 산조의 명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무등산의 규봉암이 훤히 올려다보이는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초입에 ‘연정 국악 연수원’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는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가야금 산조 제47호 예능 보유자 선영숙 명인이 살고 있다. 처음에 그곳을 찾을 때는 국악 연수원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한 양옥집의 외관에다 마을 가운데 들어서 있어서 이곳이 맞나 싶었지만, 이내 마을의 다른 집들과 나란히 모양새를 맞추고...

  • 야옹(野翁)안익지(安益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에 은거한 문인.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겸숙(謙叔), 호는 야옹(野翁). 안축(安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중돈(安重敦)이고, 아버지는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이다. 어머니는 경주 정씨(慶州鄭氏) 정승복(鄭承復)의 딸이고 부인은 김의명(金義鳴)의 딸이다. 안익지(安益之)[1608~1687]는 효우(孝友)가 뛰어나고 재주가 명민하였다. 아버지의 밑에서 수학...

  • 약물용곡리의 약수 이야기(龍谷里-藥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용곡리 약수 마을에서 샘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용곡리 약수 이야기」는 몸은 비록 불구지만 효심이 깊은 맹씨가 꿈속에서 금방울을 얻었는데, 실제로 매를 얻어 사냥을 하였다는 신이담과 매가 들어간 동굴 안의 샘물로 자신의 몸을 고치고, 맹인인 어머니까지 치료하였다는 효행담이 합쳐진 이야기이다.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에 「용곡리의 약...

  • 약우조홍천(曺弘天)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약우(若祐), 호(號)는 수졸(守拙). 교리(校理) 운곡(雲谷) 조호(曺浩)의 8세손이고, 조창적(曺昌績)의 아들이다. 조홍천(曺弘天)[?~?]은 천성이 인자하고 효성스러워 몸소 음식을 바치고 봉양하였다. 부모님의 병환이 위급하여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드려 회생시켰다.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묘에 움막을 짓고 지낼 때...

  • 양거안(梁居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천백(遷伯), 호는 육화(六化).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남주 고사(南州高士) 양지남(梁砥南)이며,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양우규(梁禹圭)이다. 양지남은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양거안(梁居安)[1652~1731]은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여 문사(文辭)가 날로 성취...

  • 양곡(良谷)이승복(李承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수(德受), 호는 양곡(良谷).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동표(李東杓)이고 어머니는 장흥 고씨 고경진(高敬鎭)의 딸이다. 생부는 이동고(李東高)이다. 이승복(李承福)[1886-1961]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종형인 죽곡(竹谷)에게서 수학하였고, 자라서는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과...

  • 양곡리(陽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는 단양(丹陽)·장곡(長谷)·해하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양곡리의 지명은 단양 마을의 양(陽)자와 장곡 마을의 곡(谷)자를 합하여 양곡리라 하였다. 단양 마을은 원래 템부라 부르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다년부(多年富)라고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점촌이라고도 했다. 원래 도자기를 굽던 곳을 불무골 또는 불무...

  • 양곡리 단양 당산제(陽谷里丹陽堂山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의 제의를 ‘당산제’라 하여 음력 정월 14일 밤에 천룡과 할머니 당산에 유교식으로 제를 지낸다. 당산제를 언제부터 행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마을이 생긴 이래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단양 마을의 당산은 마을 뒷산...

  • 양곡리 단양 선돌(陽谷里丹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에 있는 선돌. 단양 마을에서는 마을 앞과 중앙에 있는 액을 막아주는 선돌 2기를 ‘선독’이라고 부르고, 이 선돌이 있는 곳을 ‘선독거리’ 혹은 ‘선독배미’라고 칭한다. 마을 뒤쪽에 위치한 선돌은 ‘뒷선독’이라 부른다. 새마을 사업을 하던 중 마을 앞에 위치한 선돌 1기를 넘어뜨렸는데, 이후 마을의 개가 성치 않아 다시 세웠다고 한다. 양곡...

  • 양농주(梁弄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양농주(梁弄珠)[1875~?]는 말과 행동이 무거웠고 맵시가 뛰어나 재색을 겸비한 명기로 이름을 날렸다. 가무에 능했으며 가곡과 가사에 능했다....

  • 양동묵 처 죽산 안씨 효열비(梁東默妻竹山安氏孝烈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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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 있는 효열 사적비. 근대 인물 제주 양씨 양동묵[1880~1911]의 처 죽산 안씨[1886~1934]의 효열 사적비로 1966년에 세웠다. 죽산 안씨는 안택환의 딸로, 1906년에 부군이 창의하였으나 얻은 병이 악화되어 일어나지 못하자 자결하려 하다가 시할머니, 시어머니, 세 자녀가 있어서 마음을 고쳐먹고는 대상을 극진히 치렀으며 세 자녀를 결혼...

  • 양두남(梁斗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 무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득일(得一), 호는 북애정(北涯亭).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양제용(梁濟容)이고, 어머니는 광산인 김잠(金潛)의 딸이다. 여흥인 민숭경(閔崇慶)의 딸과 혼인하였다. 양두남(梁斗南)[1578~1640]은 화순 출신으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여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비변사 낭청(...

  • 양산욱(梁山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제주, 자는 명우(明宇)이다. 할아버지는 양팽손(梁彭孫)이고,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양응필(梁應畢)이다. 양산욱(梁山旭)[1551~1606]은 임진왜란 때 화순의 유위장(留衛將)으로 단양역까지 진군하여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의병장 최경회(崔慶會)에게 인솔해 간 군졸을 귀속시키고 군량을 실어 보내는 등 왜군 격퇴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 양우전(梁禹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전지(甸之), 호는 오봉(鰲峰).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5대손이며, 양응기(梁應箕)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구봉(九峰) 양위남(梁渭南)이고, 어머니는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관도(文貫道)의 딸이다. 부인은 강화 최씨(江華崔氏) 최동헌(崔東獻)의 딸이다. 양우전(梁禹甸)[1595~1672]은 가업을 잘 계승하여 호남 인...

  • 양위남(梁渭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경섭(景涉), 호는 구봉(九峯).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현손이다. 양응기(梁應箕)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양인용(梁仁容)이고, 어머니는 풍산 홍씨(豊山洪氏) 홍진(洪縝)의 딸이다. 부인은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관도(文貫道)의 딸이다. 양위남(梁渭南)[1574~1633]은 어려서부터 재기(才氣)가 남달랐고, 무과에 급제...

  • 양응정(梁應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공섭(公燮), 호는 송천(松川). 양담(梁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이하(梁以河)이고, 아버지는 교리 양팽손(梁彭孫)이며, 어머니는 금산 김씨(錦山金氏) 김섬(金銛)의 딸이다. 동래 부사 양응태(梁應台)의 아우로 능주 월곡리에서 태어났다. 양응정(梁應鼎)[1519~1581]은 재주와 지혜가 총명하여 5세에 박학에 힘쓰니,...

  • 양응태(梁應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숙전(叔躔), 호는 후포(後圃). 양담(梁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이하(梁以河)이고, 아버지는 교리 양팽손(梁彭孫)이며, 어머니는 금산(錦山)김씨 김섬(金銛)의 딸이고, 부인은 광산 김씨이다. 양응정(梁應鼎)의 형이다. 양응태(梁應台)[?~?]는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여 문사를 일찍 성취하고, 경전의 뜻을 깊이 탐구하여...

  • 양이재(兩履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전주 이씨 문중 재각. 양이재(兩履齋)는 전주 이씨 완창 대군 순양군파 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전주 이씨 문중 재각이다. 1918년 건립되었으며 재각 뒤편으로는 문중 묘가 있다. 양이재는 화순역에서 앵남리로 넘어가는 땀재 정상에서 남쪽에 보이는 종괘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일명 밀암동이라고도 한다. 건립 이후 큰 변화는 없고, 1991년에 문...

  • 양이하(梁以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호는 수월당(睡月堂). 고려 때 유격장군(遊擊將軍)이었던 양보숭(梁保崇)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복시 정(司僕寺正) 양담(梁湛)이다. 아들은 양팽손(梁彭孫)이다. 양이하(梁以河)[?~?]는 당시에 학교가 퇴폐하고 학술(學術)이 지리멸렬하게 되어 후학을 진작시켜 지도할 방책이 없음을 개탄하고, 학문을 일으키고 영재를 육성하는 일로...

  • 양인용(梁仁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함(汝涵), 호는 송석정(松石亭).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 양산립(梁山立)의 아들이다. 양인용(梁仁容)[1555-1615]은 학식이 풍부하고 지조가 뚜렷하였다.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을 지내다가 광해군 때 고향인 화순에 내려와 송석정(松石亭)을 축조하고 그곳에서 시문을 지으며 여...

  • 양재경(梁在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정(汝正), 호는 희암(希庵). 학포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귀모(梁龜模)이며, 아버지는 양준묵(梁俊默)이고, 어머니는 하동 정씨(河東鄭氏) 정승렬(鄭承烈)의 딸이다. 양재경(梁在慶)[1859~1918]은 타고난 자질이 탁월하여 스승에게 나아가 수학할 때 요지를 해득하고 송독함에 있어서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막...

  • 양재해(梁在海)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순집(順集), 호는 화은(華隱),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고, 양제묵(梁悌默)의 아들이다. 양재해(梁在海)[1854~1924]는 면암(勉庵) 최익현(益鉉)의 문인이다. 1906년(광무 10)에 스승 최익현이 태인 무성 서원(武城書院)에서 거의할 때 합류했다. 하지만 남원에서 관군의 공격을 받아 패하게 되었다. 최익현의 곁을 끝까...

  • 양제용(梁悌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양제용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공(汝恭), 호는 칠송(七松).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봉사(奉事) 양산욱(梁山旭)이다. 양제용(梁悌容)[?~?]은 1627년(인조 5)에 발발한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거의(擧義)하여 근왕(勤王)한 바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옥과 현감(玉果縣監) 이흥발(李興浡)과 순창 현감(淳昌縣監) 최온...

  • 양주남(梁柱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경(子擎), 호는 사송(四松).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효용(梁孝容)이고, 어머니는 송제민(宋齊民)의 딸이다. 양주남(梁柱南)[1610~1656]은 안방준(安邦俊)의 문인으로, 김집(金集),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의 문하(門下)에도 출입했다고 한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스승인 안방준의 의막(義幕...

  • 양주방(禳呪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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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전승되고 있는 양재(禳災)와 주술(呪術) 등 토속 신앙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 『양주방』은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전승되고 있는 토속 신앙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모아서 정리한 책이다. 세시, 신수, 사주, 관상 등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토속 신앙이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멸실 위기에 놓인 전라남도 화순 지역 민속자료들을 찾아 정리하여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전...

  • 양진영(梁進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 자는 경원(景遠), 호는 만희재(晩羲齋)·재원(梓園)·학음(鶴陰). 학포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다. 아버지는 양윤주(梁潤周)이고 어머니는 진주 김씨 김시향(金時香)의 딸이다. 양진영(梁進永)[1788~1860]은 4세에 다른 사람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스스로 문자를 깨달았고, 6세에는 8괘(八卦)와 6갑(六甲)을 외웠으며, 9세에는...

  • 양탕(羊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삶은 흑염소 고기와 토란대, 머위대, 깻잎, 부추 등을 넣어 만든 탕. 국은 어패류나 채소류 등을 넣고 끓인 국물 요리이다. 곰에서 찌개와 국으로 분화되어 발달되었으며, 찌개는 국보다 국물이 적고 건더기가 많은 것을 말한다. 국은 갱과 탕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구 기준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약용 식물...

  • 양팽손(梁彭孫)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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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대춘(大春), 호는 학포(學圃). 직장 양사위(梁思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담(梁湛)이고, 아버지는 양이하(梁以河)이며, 어머니는 해주인(海州人) 최혼(崔渾)의 딸이다. 시호는 혜강(惠康)이다. 양팽손(梁彭孫)[1488~1545]은 송흠(宋欽)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신동이라고 불렸는데, 송흠은 우리나라의 도를...

  • 양팽손 문집(梁彭孫文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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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기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문신·학자인 양팽손의 시문집. 양팽손(梁彭孫)[1488~1545]의 자는 대춘(大春), 호는 학포(學圃)이다. 중종 대의 문신으로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유배되었을 때 곁에서 함께했다. 조광조가 타계하자 학포는 조광조의 사신(捨身)을 수습하였다. 송흠(宋欽)[1459~1547] 문하에서 수학했고,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

  • 양팽손 부조묘 제례양팽손 불천위 제례(梁彭孫不遷位祭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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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양팽손 후손인 제주 양씨 종가에서 매년 음력 8월 18일에 모시는 양팽손 기제사. 양팽손 불천위 제례를 ‘부조묘 제사’, ‘학포 선생 제사’, ‘큰할아버지 제사’라 부른다. 매년 음력 8월 18일 오전 11시부터 12시에 모신다. 30여 년 전에는 제일 새벽에 모셨으나 제례를 문중이 주도하면서 시간을 변경하여 모시고 있다. 제례 비용은 문중에서 전적으로 부담하...

  • 양팽손 불천위 제례(梁彭孫不遷位祭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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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양팽손 후손인 제주 양씨 종가에서 매년 음력 8월 18일에 모시는 양팽손 기제사. 양팽손 불천위 제례를 ‘부조묘 제사’, ‘학포 선생 제사’, ‘큰할아버지 제사’라 부른다. 매년 음력 8월 18일 오전 11시부터 12시에 모신다. 30여 년 전에는 제일 새벽에 모셨으나 제례를 문중이 주도하면서 시간을 변경하여 모시고 있다. 제례 비용은 문중에서 전적으로 부담하...

  • 양학(梁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화순 출신의 기녀. 양학(梁鶴)[1875~?]은 제주 양씨로서 인품이 단아하고 학문 또한 깊었다고 한다. 시조·가곡·가사에 능통했으며 한시와 사군자에도 능하여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 양한묵(梁漢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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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3·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으로 화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字)는 길중(吉仲)·경조(景朝), 호(號)는 지강(芝江). 아버지는 양상태(梁相泰)이고 어머니는 낭주 최씨(郎州崔氏)이고 부인은 풍산 홍씨이다. 양한묵(梁漢默)[1862~1919]은 1895년 탁지부 주사가 되어 1895년 능주에서 세무관으로 근무하였다. 1897년 사직한 뒤 중국 베이징...

  • 양한묵 무덤(梁漢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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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지강 양한묵의 무덤. 양한묵(梁漢默) [1862~1919]은 1919년 3·1 운동을 일으킨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고 3월 1일 태화관에서 개최된 독립 선언식에 참여한 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26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서울...

  • 양회갑(梁會甲)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에서 활동했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초명은 회을(會乙), 자는 원숙(元淑), 호는 정재(正齋). 학포 양팽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호묵(梁虎黙)이며, 아버지는 현재(弦齋) 양재덕(梁在德)이다. 양회갑(梁會甲)[1884~1961]은 재주와 지혜가 총명하고 영특하여 문리를 일찍부터 성취하였다. 6세부터 할아버지인 양호묵(梁虎黙)에게서 글을 배웠고, 일신재(日新齋)...

  • 양회두 가옥(-家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 주택. 양회두 가옥은 학포 양팽손[1488~1545]의 8대손인 양명구[1710~1794]가 건립한 가옥이다. 당시 양명구는 만석꾼의 대지주로서 양동호·양승수 가옥 등 양씨 문중의 여러 가옥 건립에도 관여하였다고 전해진다. 골짜기에 조성된 월곡 마을을 진입하면 화순 양동호 가옥, 화순 양승수 가옥이 우측 북사면에 자리하고 이...

  • 양회락(梁會洛)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처중(處仲), 호는 동계(東溪).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재욱(梁在郁)이고, 어머니는 안협(安浹)의 딸이다. 한말 의병장 양회일(梁會一)의 동생이다. 양회락(梁會洛)[1862~1935]은 천성이 총명하고 행동거지가 심중하였으며, 10세에 경전을 통달하였다.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과 노백헌(老栢軒) 정재규...

  • 양회용(梁會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이견(而見), 호는 연파(蓮坡).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재욱(梁在郁)이다. 양회일(梁會一)이 형이다. 양회룡(梁會龍)[1881~1959]은 1907년에 형 양회일과 함께 화순군 이양면 쌍산리에서 의병을 모아 거의하였다. 그 후 능주, 화순, 동복의 관아 등을 공격하였고, 광주(光州)로 진군하던 도중 너릿재에서 적...

  • 양회익(梁會益)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 자는 녹여(祿汝), 호는 죽촌(竹村).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고, 아버지는 양재연(梁在淵)이다. 양회익(梁會益)[1861~?]은 용모가 단아하고 재주가 뛰어나 사서(四書)·육경(六經)·제자백가(諸子百家)를 두루 섭렵하였다. 시문(詩文)을 잘 지었고 특히 필법이 오묘하였다. 1888년(고종 25)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음직으로 영회...

  • 양회일(梁會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해심(海心), 호는 행사(杏史).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재욱(梁在郁)이다. 양회룡(梁會龍)이 동생이다. 양회일(梁會一)[1856년~1908]은 1883년(고종 20)에 쌍봉으로 이사한 후에 근 10여 년을 서울에서 보냈다. 1901년에 다시 쌍봉으로 돌아와 1904년 도적들이 횡행하자 도약장(都約長)이 되어 고을을...

  • 양회총(梁會鏦)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회총(梁會鏦)[1919~?]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 공립 보통학교 재학 중인 1936년 동맹 휴학을 주도하였다. 이 때문에 국내 진학이 어렵게 되자 도일하여 동경 정칙 중학교(正則中學校)에 입학하였으나, 1937년 항일적 내용이 담긴 일기장이 발각되어 40일간 구금되고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지바현[千葉縣] 소재 명륜 중학교(明倫...

  • 어리(漁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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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청풍면 어리는 어촌(漁村)·금동의 2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어리의 지명은 어촌 마을의 어(漁)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어촌 마을은 어릿물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마을 뒷산에 삿갓봉과 꾸덕봉이 있고 옆으로는 황새등과 당산등이 있는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황새등은 잉어형, 당산등은 낚시줄형이라고 한다. 또한 마을터가...

  • 어리 고인돌 떼(漁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어리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어리 고인돌 떼는 마을 입구 신안 주씨의 선산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어리 전272번지와 임273-1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어리 고인돌 군은 신안 주씨 묘역을 중심으로 12기가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고인돌 상석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동서 방향이며 2기만 남북 방향이...

  • 어리 지석묘군어리 고인돌 떼(漁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어리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어리 고인돌 떼는 마을 입구 신안 주씨의 선산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어리 전272번지와 임273-1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어리 고인돌 군은 신안 주씨 묘역을 중심으로 12기가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고인돌 상석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동서 방향이며 2기만 남북 방향이...

  • 어린이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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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영유아 보육 기관. 어린이집 초창기에는 취업모(就業母)가 필요할 때 아이를 맡긴다는 의미에서 탁아소(託兒所)라 불렀으나, 어린이의 보호와 교육을 위한 기관이라는 의미를 강화하고자 하는 정부 방침에 의하여 1968년 어린이집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1982년부터 한동안 새마을 유아원으로 지칭되기도 하였으나 1991년에 「영유아 보육법」에 의해 어린이집으로...

  • 어울림 가정 상담 지원 센터(-家庭相談支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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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에 있는 여성 및 가족 문제 상담 민간 여성 복지 시설. 전라남도 화순 지역 여성들의 복지 증진을 도모하고, 증가하는 가정 폭력과 여성 폭력의 예방을 위해 상담과 교육·법률 지원 등을 목적으로 2003년 6월 9일 민간에 의해 설립 운영되고 있다. 화순군 관내에서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가정의 위기 현상이 심화되자 여성들의 인권을...

  • 언도리(彦道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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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면 언도리는 언동(彦洞)·오도미(吾道味) 등 2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언도리는 언동 마을의 언(彦)과 오도미 마을의 도(道)를 각각 취하여 이름을 만들었다. 언동 마을은 용등(龍登), 또는 예산(禮山)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언동 마을의 뜻은 큰 마을이라는 뜻으로 엉굴[어은굴]과 같은 의미[큰형을 엉아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이...

  • 언도리 문화 유씨 집성촌(彦道里文化柳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언도리 오도미 마을을 중심으로 세거하는 문화 유씨 집성촌. 오도미 마을은 윗마을이란 뜻의 ‘우데미’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유봉운(柳鳳運)[1713~1793]을 입향조로 하여 세대를 이어오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언도리의 문화 유씨 집성촌이다. 1730년경 유봉운이 화순현 동면 하서 마을에서 분가하여 오도미 마을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유봉운은 화순 입향조...

  • 언도리 오도미 당산제(彦道里吾道美堂山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언도리 오도미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 자정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동면 언도리 오도미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밤 9시경에 당산 할머니와 당산 할아버지 앞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지금까지 제일을 옮긴 적은 없으며 마을에 초상이 나더라도 그 집만 당산제에 참여하지 못하고 당산제는 그대로 진행된다. 제관은 정초에 마을 회의를 통해 세 명을 뽑으며...

  • 언론·출판(言論出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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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 인쇄물 등의 매체를 통해 사실을 전달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전라남도 화순군에는 중앙 종합 일간지와 지방 종합 일간지, 지역 신문 등의 언론 매체가 있으며, 연속 간행물과 향토지, 조사 보고서 등 화순과 관련한 출판물이 있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신문이 보급된 것은 개화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역에 배부된 신문은 『황성...

  • 언어(言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사용하는 서북 방언에 해당하는 언어. 방언은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는 말을 일컫는 용어로, 표준어와 대치되는 개념이다. 전라남도 지역 방언의 특징은 ‘ㅔ’를 ‘ㅣ’로 발음한다. 예를 들어 ‘게’를 ‘기’로, ‘베개’를 ‘비개’, ‘베어 먹다’를 ‘비어 먹다’ 등으로 발음하며, 종결 어미 반말에 해당하는 ‘-랑께’와 ‘해요’ 체에 해당하는 ‘~라우’를 많이 사...

  • 엄나무 걸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액을 막기 위해 안방 문 위에 엄나무 가지를 걸어두는 풍속.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궂은 사람이나 잡귀, 역귀(疫鬼)가 집안으로 범접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엄나무를 걸어 두는 풍속이다. 예로부터 엄나무 줄기나 가지에는 날카롭고 굵은 가시가 촘촘히 나 있어 잡귀나 병마가 이 나무를 보면 무서워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는 엄나무...

  • 엄두릅나무 걸기엄나무 걸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액을 막기 위해 안방 문 위에 엄나무 가지를 걸어두는 풍속.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궂은 사람이나 잡귀, 역귀(疫鬼)가 집안으로 범접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엄나무를 걸어 두는 풍속이다. 예로부터 엄나무 줄기나 가지에는 날카롭고 굵은 가시가 촘촘히 나 있어 잡귀나 병마가 이 나무를 보면 무서워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는 엄나무...

  • 엄드렁나무 걸기엄나무 걸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액을 막기 위해 안방 문 위에 엄나무 가지를 걸어두는 풍속.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궂은 사람이나 잡귀, 역귀(疫鬼)가 집안으로 범접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엄나무를 걸어 두는 풍속이다. 예로부터 엄나무 줄기나 가지에는 날카롭고 굵은 가시가 촘촘히 나 있어 잡귀나 병마가 이 나무를 보면 무서워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는 엄나무...

  • 업(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재복(財福)을 관장한다고 믿는 신. 화순군에서의 업은 성주, 조상, 조왕, 삼신에 비해 그 신앙의 강도가 약하며 정기적으로 의례를 거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업은 구렁이나 두꺼비, 족제비 등의 동물로 형상화되는데 주로 구렁이로 나타난다. 업은 일정한 거처 없이 집안의 광이나 지붕의 용마름 밑 등 집안 어딘가에 존재한 것으로 믿으며 조심스러워 한다. 실제로 업...

  • 에코 산업(-産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감도리에 있는 화장품 제조 기업. 에코 산업은 화장품, 화장품 관련 제품, 바이오 관련 제품 등을 제조, 판매하는 기업이다. 화장품 제조 및 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09년 4월 20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선동에 에코 산업을 설립하였다. 2010년 2월 벤처 기업 확인을 받았다. 2010년 11월 12일 기업 부설 연구소를 인증 받아 운영하였으...

  • 여공(汝恭)양제용(梁悌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양제용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공(汝恭), 호는 칠송(七松).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봉사(奉事) 양산욱(梁山旭)이다. 양제용(梁悌容)[?~?]은 1627년(인조 5)에 발발한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거의(擧義)하여 근왕(勤王)한 바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옥과 현감(玉果縣監) 이흥발(李興浡)과 순창 현감(淳昌縣監) 최온...

  •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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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과 도곡면 일대에 있었다고 비정되는 삼한 시대 마한의 소국. 마한 지역에는 기원전 2세기 말엽부터 기원전 1세기 무렵 본격적인 철기 문화 단계에 이르러 원시적인 공동체가 붕괴되고 소국, 혹은 성읍 국가(城邑國家)라고 하는 정치체들이 등장하였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전라남도 지역에는 상당한 숫자의 소국이 존재하였고, 화순 지역에 있었다...

  • 여미 사랑 학교화순 전남 대학교 병원 여미 사랑 병원 학교(和順全南大學校病院-病院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화순 전남 대학교 병원에 있는 화순 오성 초등학교와 화순 제일 중학교에서 운영하는 병원 학교. 여미 사랑 병원 학교는 전라남도 화순 교육 지원청과 화순 전남 대학교 병원의 협의 하에 건강 장애로 장기 치료를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학업의 연속성 및 또래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여 학습 결손 및 출석 부담감을 최소화시키고 심리적·정서적 안정을 통해 치료의 효과를...

  • 여미현(汝湄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일대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방 군현. 여미현(汝湄縣)은 백제 때의 잉리아현(仍利阿縣)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여미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여미(汝湄)’ 외에 ‘여빈(汝濱)’ 등으로 불렸으며, 능성군(綾城郡)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신라는 통일을 달성한 후 전국을 9주로 나누어 지배하였고, 옛 신라 지역에 3주, 옛 고구려 지역에 3주,...

  • 여빈(汝濱)여미현(汝湄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일대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방 군현. 여미현(汝湄縣)은 백제 때의 잉리아현(仍利阿縣)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여미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여미(汝湄)’ 외에 ‘여빈(汝濱)’ 등으로 불렸으며, 능성군(綾城郡)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신라는 통일을 달성한 후 전국을 9주로 나누어 지배하였고, 옛 신라 지역에 3주, 옛 고구려 지역에 3주,...

  • 여송(與松)김학섭(金鶴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김학섭(金鶴燮)[?~?]의 호는 여송(與松)으로 박식한 선비로 존경받았다. 일본 유학시절에는 항일운동을 한 애국 지사이기도 한 김학섭은 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판소리에 조예가 깊었다. 「춘향가」 중 범피중류가 특징이었다고 한다. 가곡과 가사에도 능했다....

  • 여수(汝受)신유익(愼惟益)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능주 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여수(汝受). 아버지는 신이명(愼爾明)이다. 신유익(愼惟益)[1671~?]은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01년 5월 무장 현감으로 부임하고 여러 지역의 수령을 거쳐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 1722년 9월 능주 목사로 부임하고, 1723년 영세 불망비가...

  • 여옥(如玉)배구(裵玖)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여옥(如玉), 호는 천은(川隱).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裴文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배수철(裴壽鐵)이고 아버지는 배응인(裴應絪)이다. 배구(裵玖)[1569~1640]는 사림의 천거로 사옹원 참봉을 제수받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인조 14)에 조수성(曺守誠)과 함께 창의하여 화순 지역에서 병사 50여명을 인솔하여...

  • 여옥(汝沃)하윤구(河潤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동복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옥(汝沃), 호는 금사(錦沙). 군수(郡守) 하치(河治)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군(參軍) 하대표(河大豹)이며, 어머니는 경주 배씨(慶州裵氏)이다. 하윤구(河潤九)[1570~1646]는 타고난 자질이 탁월하고, 기우가 단정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학문하길 좋아하였다. 문장을 일찍 성취하여 약관의 나이에 정구(鄭逑)의 문하...

  • 여은(汝恩)안택환(安澤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여은(汝恩), 호는 삼희당(三希堂).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안순(安栒)이고, 어머니는 수원 백씨(水原白氏) 백진훈(白鎭勳)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현수(朴賢秀)의 딸이다. 안택환(安澤煥)[1844~1917] 은 자질이 순박하고 성품이 인후하였다. 어려서 백부(伯父) 안숙(安橚)에게...

  • 여자들은 고데 파마하고, 남자들은 양복입고 외출하던 마을이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박연네 씨는, 젊은 시절에 읍내라도 나갈 요량이면 미용실에 들러서 ‘고대’를 했다. 고대는 젓가락처럼 생긴 도구를 불에 가열해서 머리카락을 둥글게 마는 것을 말하는데, 마을 안에 미용실이 두 개나 있어서 천운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근 시골 마을에서도 머리를 만지러 왔다. 당시에 천운 마을 여자들이 미용실에서 ‘고데’를 하고 외출을 했다면, 남자들은 양복점에서 맞춘 양복을 입고...

  • 여정(汝正)양재경(梁在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정(汝正), 호는 희암(希庵). 학포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귀모(梁龜模)이며, 아버지는 양준묵(梁俊默)이고, 어머니는 하동 정씨(河東鄭氏) 정승렬(鄭承烈)의 딸이다. 양재경(梁在慶)[1859~1918]은 타고난 자질이 탁월하여 스승에게 나아가 수학할 때 요지를 해득하고 송독함에 있어서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막...

  • 여즙(汝楫)민부(閔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여즙(汝楫), 호는 칙이당(則以堂). 집의(執義) 민회삼(閔懷蔘)의 후예이다. 민백희(閔百爔)의 손자이고 병조참판 민주현(閔冑顯)의 아들이다. 민부(閔埠)[1845~?]는 가학을 계승하여 학문에 뛰어났고 문장에도 능하였다. 1876년(고종 13)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내려오는 길에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 들러...

  • 여지도 능주목(輿地圖綾州牧)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화순군 능주 지역의 지도. 『여지도』는 ‘비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으로 전국 모든 군현을 비교적 작은 크기로 그린 18세기에 제작된 지도책이다. 이용에 매우 편리한 장점을 지녔으며, 군현 지도의 보급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화순 지역의 옛 모습은 조선 8도의 대축척 군현 지도가 수록된 『여지도』 2첩 중 전라도 부분의 「능주목」 지도이다...

  • 여지도 동복현(輿地圖同福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화순군 동복 지역의 지도. 『여지도』는 비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으로 전국 모든 군현을 비교적 작은 크기의 지도책에 그림으로써 이용에 매우 편리한 장점을 지닌다. 이를 통해 군현 지도의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의 『여지도』는 3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3첩 중 2첩은 팔도가 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황...

  • 여지도 화순현(輿地圖和順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화순 지역의 지도. 『여지도』는 비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으로 전국 모든 군현을 비교적 작은 크기의 지도책에 그림으로써 이용에 편리한 장점을 지닌다. 이를 통해 군현 지도의 보급에 기여하였으며, 지지적인 내용을 지도 뒷면에 상세하게 기록함으로써 지지를 지도의 부록으로 활용하여 지도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각 지역에 대한 역사·사회·경제적 정보를...

  • 여진(汝眞)송상언(宋相彦)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여진(汝眞)이고, 호(號)는 운호(雲湖).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를 지낸 송자은(宋自殷)의 후손이다. 송상언(宋相彦)[?~?]은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한 효도로써 하고, 부모님께서 병에 드시니 수십 년 동안 약 시중을 한결같이 하였다. 병이 매우 심해져서 하늘에 기원하니 천신(天神)이 감응하였다. 부모님의 상(喪)을...

  • 여징(汝徵)문홍헌(文弘獻)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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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여징(汝徵), 호는 경암(敬菴)·송계(松溪). 충숙공(忠肅公)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문검(文儉)이고, 어머니는 청주 한씨로 예조 판서(禮曹判書) 한엽(韓曄)의 딸이다. 문홍헌(文弘獻)[1551~1593]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 여함(汝涵)양인용(梁仁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함(汝涵), 호는 송석정(松石亭).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 양산립(梁山立)의 아들이다. 양인용(梁仁容)[1555-1615]은 학식이 풍부하고 지조가 뚜렷하였다.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을 지내다가 광해군 때 고향인 화순에 내려와 송석정(松石亭)을 축조하고 그곳에서 시문을 지으며 여...

  • 여호와의 증인 화순 회중(-證人和順會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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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 회관. 여호와의 증인은 천년 왕국 신앙, 성서적 엄격 주의 등 미국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독특한 흐름을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기독교 종파의 하나로, 공식 이름은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이다. 1872년 찰스 러셀(Charles Russel...

  • 여화(汝化)조병섭(曺秉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병인양요 때 활동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여화(汝化), 호는 송곡(松谷). 죽림(竹林) 조수문(曺秀文)의 후손이고, 조령원(曺齡源)의 아들이다. 조병섭(曺秉燮)[?~?]은 병인양요에 창의(倡義)하여 강화(江華)에 이르렀으나 강화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돌아왔다. 1869년(고종 6) 광양 농민 봉기(光陽農民蜂起)에 화순 현감(和順縣監) 김...

  • 역사(歷史)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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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문자 기록이 있는 역사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선사 시대의 경우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중기인 약 5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삼한 소국들이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데, 전라남도 화순군 능...

  • 역원(驛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화순 지역에는 조선 시대에 화순현·동복현·능주목 등 3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화순현에는 가림역(加林驛)·신원(新院)·내화원(乃火院)·고자원(古者院)·삼원(三院)이 있었고, 동복현에는 검부역(黔富驛)·남비원(攪轡院)·방석원(方席院)·남덕원(南德院)·사평원(沙坪院)·여점원(餘岾院)이 있었으며, 능주목에는 인물역(仁物驛)...

  • 역정사부일사(扶日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 있는 창녕 조씨 사당. 부일사는 조선 세종 때 병조 판서를 지낸 조흡(曺恰)을 주벽으로 조대중(曺大中), 조수성(曺守誠), 조성홍(曺誠弘), 조황(曺煌) 등을 배향하는 창녕 조씨 사우이다. 1785년(정조 9)에 고을 유림의 발의로 역정사(櫟亭祠)를 건립하였고 1868년(고종 5)의 서원 철폐 명령으로 훼철되었다. 후손들이 화순읍 다지리에 부일사(...

  • 연경(演瓊)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법호 연경(演瓊)만 전해지고, 세속의 성, 법명 등은 알려진 것이 없다. 연경(演瓊)[?~?]은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당시 동복면 내서면 경산]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규봉암 중창 상량기(圭峰庵重創上樑記)」가 남아 있어 화순 출신 승려인 연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규봉암 중창 상량기」에 의하면, 연경은 규봉암이 폐허로...

  • 연곡사수산 정사(壽山精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만수리에 있는 배석면(裵錫冕)의 강학소. 배석면(裵錫冕)[1885~1978]이 강학의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자는 순문(純文), 호는 노암(魯庵), 본관은 달성(達城)으로 일신재(一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서 태어났다. 수산 정사에 관한 한시 원운이 남아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일사구성죽수동(一舍苟成竹樹東)[한...

  • 연극(演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무대 위 배우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종합 예술이자 행위 예술. 전라남도 화순군의 연극 활동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청년 운동 단체에 의해 시작된 소인극에서 비롯되었다. 소인극(素人劇)은 전문 배우가 아닌 사람들이 하는 연극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회 혁신과 계몽 차원에서 기획·연출된 연극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 화순군의 연극 활동은 청년 운동과 깊은 연관을...

  • 연날리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청소년들이 정월 초부터 보름 사이에 바람이 잘 부는 넓은 들판이나 언덕에서 연을 만들어 줄을 달아 하늘 높이 날리는 민속놀이. 연날리기는 정초에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갖가지 모양의 연을 하늘 높이 띄우며 노는 민속놀이다.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 사이에 주로 즐겼으며, 그해의 재난을 멀리 보낸다는 뜻에서 송액이라 쓴 연을 띄워 일부러 연줄을 끊기도 하였다. 화순군...

  • 연담(蓮潭)유일(有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자는 무이(無二), 법호는 연담(蓮潭). 속세의 성은 천씨(千氏)이다. 유일(有一)[1720~1799]은 화순군 적천리에서 태어났다. 『통감』·『대학』·『맹자』·『중용』 등 유가 경전을 공부하였다. 1737년 18세에 승달산 법천사(法泉寺)의 성철(性哲)을 따라 출가하였고, 이듬해 안빈 노사(安賓老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보흥사(普興寺)의...

  • 연둔리(蓮屯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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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복면 연둔리는 연동·둔동 2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연둔리의 지명은 연동 마을의 연(蓮)과 둔동 마을의 둔(屯)을 각각 취하여 만들어졌다. 둔동 마을에는 과거 군인들이나 역민(驛民)들이 경작하는 둔전이 있었다. 이 둔전에서 나온 생산물로 군대나 역을 운영하도록 했다. 둔전이 있어 둔골이라 부르다가 후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 연양리(蓮陽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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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는 연동(蓮洞)·양촌(陽村) 2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연양리의 지명은 연동 마을의 연(蓮)자와 양촌 마을의 양(陽)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연동 마을은 마을 가운데 연못이 있고 연방죽이 있어 방죽골이라 부르다가 연꽃 연(蓮)자를 취하여 연동이라 하였다. 양촌 마을은 햇볕이 잘 비추는 양지쪽에 위치하여 양지동[혹...

  • 연양리 양촌 당산제(蓮陽里陽村堂山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 자정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에서는 ‘당산제’라 하여 매년 음력 정월 14일 자정에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 앞에서 제를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기 1주일 전에 마을 회의를 통해 헌관, 축관, 화주 세 사람을 선출하며 제비는 마을 각 호에서 갹출하고 부족한 것은 마을 공동 비용에서...

  • 연양리 옹관묘(蓮陽里甕棺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에 위치한 삼국시대 무덤 유적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 북쪽 구릉에 위치하였으나 발굴 조사 후 도로가 개설되면서 소멸되었다. 능주·화순 간 도로 공사와 관련하여 1997년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한 다음 1999년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여 2기의 옹관묘를 확인하였다. 연양리 1호 옹관묘는 구릉상에 위치하며...

  • 연월리(蓮月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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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는 월송(月松)·복녕(福寧)·연곡(蓮谷)·도수동(倒水洞)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나 도수동 마을은 폐촌이 되었다. 연월리의 지명은 연곡 마을의 연(蓮)과 월송 마을의 월(月)을 각각 취한 것이다. 월송 마을은 월송쟁이라 불러졌는데, 마을이 반달 형국이고 소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복녕 마을은 옛골이라 부르는데...

  • 연지(年之)임대년(林大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연지(年之), 호는 동계(東溪).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으로, 진사 임회(林檜)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임명(林蓂)이다. 임대년(林大年)[1539~?]은 1606년(선조 39)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가 되었다. 전라남도 화순군 대리 대동 마을로 이거하였다....

  • 연촌 정사(蓮村精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에 있는 황채오의 강학소. 연촌 정사는 장수 황씨 연촌(蓮村) 황채오(黃采五)[1895~1965]가 1963년에 건립하고 강학하던 곳이다. 정사에는 1963년에 황채오가 쓴 「연촌 자서」와 「하계당 추서」가 걸려 있다. 황채오의 자는 성백(性伯), 호는 연촌(蓮村), 본관은 장수이다. 1895년 능성의 도림리에서 황하원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중헌...

  • 연파(蓮坡)양회용(梁會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이견(而見), 호는 연파(蓮坡).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재욱(梁在郁)이다. 양회일(梁會一)이 형이다. 양회룡(梁會龍)[1881~1959]은 1907년에 형 양회일과 함께 화순군 이양면 쌍산리에서 의병을 모아 거의하였다. 그 후 능주, 화순, 동복의 관아 등을 공격하였고, 광주(光州)로 진군하던 도중 너릿재에서 적...

  • 연화리(蓮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는 쥐암골[하추동]·뒷마을[둣물]·연화동(蓮花洞)·샛터·추동 등 5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뒷마을과 샛터 마을은 폐촌이 되었다. 연화리의 이름은 연화동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연화동 마을은 처음에 제비연소가 있어서 연화리(鳶花里)라고 했으나, 연화도수(蓮花倒水) 형국의 이름을 따서 연화동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 연화리 선독연화리 선돌(蓮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에 있는 선돌. 연화리에서는 액운을 막아주는 선돌을 ‘선독’이라고 부른다. 또한 선돌이 있는 곳을 ‘선독거리’라고 부른다. 마을 도로 변 양쪽에 선돌 2기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돌 1기, 즉 선돌 3기가 전해져 왔다. 현재 선돌 1기만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연화리 선돌은 마을로부터 북쪽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연화리 선돌의...

  • 연화리 선돌(蓮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에 있는 선돌. 연화리에서는 액운을 막아주는 선돌을 ‘선독’이라고 부른다. 또한 선돌이 있는 곳을 ‘선독거리’라고 부른다. 마을 도로 변 양쪽에 선돌 2기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돌 1기, 즉 선돌 3기가 전해져 왔다. 현재 선돌 1기만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연화리 선돌은 마을로부터 북쪽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연화리 선돌의...

  • 연화리 입석연화리 선돌(蓮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연화리에 있는 선돌. 연화리에서는 액운을 막아주는 선돌을 ‘선독’이라고 부른다. 또한 선돌이 있는 곳을 ‘선독거리’라고 부른다. 마을 도로 변 양쪽에 선돌 2기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돌 1기, 즉 선돌 3기가 전해져 왔다. 현재 선돌 1기만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연화리 선돌은 마을로부터 북쪽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연화리 선돌의...

  • 연화탑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 석탑(和順雲住寺圓形多層石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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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에 있는 이형 석탑. 운주사는 한 계곡에 수많은 석불과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나 토속적인 조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처럼 운주사는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인지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연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곧...

  • 열녀(烈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통 시대 화순에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부녀자. 열녀(烈女)는 오랜 세월 고난과 싸우며 수절하거나 위급할 때 목숨으로 정조를 지킨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열부(烈婦)라 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 들어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부녀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정절 사상이 일종의 계율로 장려되었고, 수절은 부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덕목으로 간주되었다. 제도적으...

  • 열두 달이 즐거운 농가맛집, 도장 마을 밭 노래 밥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농가맛집, 농촌 진흥청이 인증한 우리의 맛, 열두 달이 즐거운 밭노래 밥상” 도장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이다. 카페처럼 멋진 도장 마을 회관에도 역시 같은 문구의 안내판이 걸려 있다. “열두 달이 즐거운 밭노래 밥상!” 왠지 이름만 들어도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한 향토적이고 친환경적인 먹거리를 떠올리게 된다. 마을 회관으로 들어서니 방 한켠에 50여개의 네모난...

  • 열린 도서관화순 열린 도서관(和順-圖書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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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있는 공공 도서관. 2011년에 개관한 화순 열린 도서관은 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지식과 다양한 정보를 서비스하고, 맞춤형 도서관 문화프로그램으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여 생활의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지역 주민에게 폭넓은 정보 및 다양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개관하였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공간 이상으로 군민들의 만...

  • 열린 학당(-學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 군민을 대상으로 화순군청에서 주관하는 평생 학습 프로그램. 세계화와 정보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배양하고 화순 군민들의 정서 함양을 위하여, 화순군청이 매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개최하는 교양 강좌 프로그램이다. 전라남도 화순군청에서 운영하는 평생 학습 프로그램으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 열부열녀(烈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통 시대 화순에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부녀자. 열녀(烈女)는 오랜 세월 고난과 싸우며 수절하거나 위급할 때 목숨으로 정조를 지킨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열부(烈婦)라 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 들어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부녀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정절 사상이 일종의 계율로 장려되었고, 수절은 부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덕목으로 간주되었다. 제도적으...

  • 염금달(廉今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활동한 국악인 염금달(廉今達)[1920~1950]은 1920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화순읍 유천리로 이거하였다 천부적인 성대와 뛰어난 맵시를 지닌 소리꾼으로 예인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다. 조선 후기에 더늠 소리를 넣어 득음하였던 창자들을 8명창으로 구분하였는데, 그 당시 8명창의 뒤를 이을 뛰어난 소리꾼으로 불렸다. 6·25전쟁 당시...

  • 염색(染色)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옷이나 천에 물을 들이는 방법. 전통적인 염색은 자연에서 채취한 꽃, 나무, 흙, 벌레, 조개 등의 천연 염료를 사용하여 물들이는 천연 염색의 방식으로 한다. 천연 염색의 종류는 쪽물 염색, 감 염색, 치자 염색, 소목(蘇木) 염색 등 매우 다양하다. 천연 염료의 종류로는 색깔이 있는 돌이나 흙에 함유된 광물성 염료, 식물의 잎·꽃·열매의 즙·뿌리와 해초류...

  • 염소탕양탕(羊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삶은 흑염소 고기와 토란대, 머위대, 깻잎, 부추 등을 넣어 만든 탕. 국은 어패류나 채소류 등을 넣고 끓인 국물 요리이다. 곰에서 찌개와 국으로 분화되어 발달되었으며, 찌개는 국보다 국물이 적고 건더기가 많은 것을 말한다. 국은 갱과 탕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구 기준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약용 식물...

  • 염수당(念修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에 있는 양우승의 강학소. 염수당은 양회한(梁會澣)이 건립하고, 아들 양우승(梁佑承)이 강학의 장소로 활용하였다. 양회한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에게서 수학하였고, 양우승은 양회락(梁會洛)에게서 수학한 후 오준선(吳俊善)과 고광선(高光善) 등에게서 취정(就正)하였다. 양우승은 「염수당기」를 지었는데, 부친이 염수당을 건립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 염옹(念翁)송태회(宋泰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학문에 통...

  • 염인(念人)송태회(宋泰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학문에 통...

  • 염재 유고(念齋遺稿)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화순 출신 한문학자이자 서화가인 염재 송태회의 미간행 필사본 문집.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호가 염재(念齋), 염재거사(念齋居士), 염재(恬齋), 염와노부(恬窩老夫), 호산(壺山)이며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한문학자이자 서화가이다. 숙부인 사호(沙湖) 송수면(宋修勉)[1847~1916]의 제자로 16세에 진사시에 급...

  • 염재(恬齋)송태회(宋泰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학문에 통...

  • 염재(念齋)송태회(宋泰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학문에 통...

  • 염재거사(念齋居士)송태회(宋泰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학문에 통...

  • 염재산인(念齋山人)송태회(宋泰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학문에 통...

  • 영귀정(詠歸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 칠송 마을에 있는 정의림의 강학소. 영귀정은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 칠송 마을에 정의림(鄭義林)[1845~1910]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자는 계방(季方), 호는 일신재(日新齋),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의 3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문집인 『일신재집(日新齋集)』...

  • 영남발선가(嶺南發船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민제장이 지은 시조. 민제장(閔濟章)[1671~1729]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호는 삼금당(三錦堂)이다. 『삼금당행록(三錦堂行錄)』의 연보 ‘신묘(辛卯)’[1711년, 민제장의 나이 41세] 부분에 「영남발선가」가 수록되어 있다. 연보에는 “처음 영남으로부터 배를 띄워 출발할 때에 공이 노래를 지었다[初自嶺南發船公作歌].”라고 한 후 한 구절씩 한시와 시조...

  • 영농 조합(營農組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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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의 현지 농어민이 발기인으로 하여 만든 조합 법인. 영농 조합 법인 및 영어 조합 법인은 현지 농어민 5명 이상을 발기인으로 하여 만들 수 있는 조합 법인이다. 협업적 농업 및 어업 경영을 통하여 생산성을 향상하고, 농수산물의 출하, 유통, 가공, 수출 등을 공동으로 전개하는 법인이다. 화순군 내의 영농 조합 법인의 전체 숫자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화순군청에 신...

  • 영농 조합 법인 화순 청풍 돼지 감자(營農組合法人和順淸豊-)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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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에 있는 감자 재배 영농 조합 법인. 영농 조합 법인 화순 청풍 돼지 감자는 돼지 감자의 재배 및 관련 제품 생산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10년 3월 22일 돼지 감자의 작물 재배업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한 이후 돼지 감자 재배와 관련 식품들을 생산하였다. 2011년 홈페이지를 개장해 돼지 감자와 가공 식품, 울금 관련 식품들을 온라인을 통해 직접 판...

  • 영덕정(映德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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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 있는 활터. 영덕정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지역 주민의 궁도 활동을 도모하고자 마련된 궁도장이다. 영덕정은 능주 주민과 화순 군민의 궁도 발전에 도모하고자 1920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에 국립 사장(射場)으로 개설되었다. 1920년에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에 국립 사장(射場)으로 개설하였는데, 이후 사정(射亭)을 영벽정으로 이설하였다....

  • 영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영등신을 맞아들이는 의례. ‘영등신’ 또는 ‘영등 할머니’라고도 부르는 영등은 음력 2월에 하늘에서 내려와 비바람을 일으킨다는 신이다. 화순군에서는 영등 할머니가 음력 2월 초하루에 내려와서 15일에서 20일 사이에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고 여긴다. 영등 할머니가 처음 내려올 때 비가 오는 등 날씨가 좋지 않으면 며느리를 데리고 내려오는 것이고 날씨가 좋고 바람...

  • 영롱대(玲瓏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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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있는 조선 전기 김곤변이 지은 누정. 영롱대의 주인 김곤변은 퇴계의 문인으로 한강 정구, 은봉 안방준, 송강 정철,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의 당대 명사들과 교우하였다. 김곤섭은 산수를 사랑하여 광주에서 일부러 이곳으로 이거하여 마을 동쪽 농암(瓏巖) 위에 이 영롱대를 지었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호를 농재산인(瓏齋散人)이라고 하였다. 그의 조카였던...

  • 영모각(永慕閣) <